[白球와 함께한 60年] (26) 럭키금성, MBC 인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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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89년 가을. MBC 청룡의 최창봉 구단주에게서 구단 매각을 추진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나는 당시 이웅희 총재에게 현대그룹에 인수를 타진해 보자고 건의했다.

현대는 삼성과 함께 국내 최대 기업이었고, 프로야구 초창기에 창단 신청을 한 적도 있었다. 나는 이웅희 총재에게 작은 회사는 계속되는 적자에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으니 가능하면 대기업에 인수를 권유하자고 말했다.

이웅희 총재를 통해 10월 2일 현대 정주영 회장에게 의사를 타진한 결과 정회장은 선뜻 좋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래서 10월 6일 정주영 회장, 최창봉 구단주, 이웅희 총재가 만났고, 양측의 실무자들에게 구체적인 교섭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

MBC 쪽에서는 경영관리실장, 현대 쪽에서는 그룹 기획이사가 실무자로 나섰다. MBC측은 처음에 인수 금액 1백50억원을 제시했으나 약 한달 간의 협상 끝에 80억원선에서 조율이 이뤄졌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정주영 회장의 최종 결재를 받지 못해 인수 협상은 결렬이 되고 말았다. 정회장은 "야구단에 무슨 자산이 있느냐. 우리가 인수한 뒤 알아서 주는 거지 아무 자산도 없는 회사를 왜 돈을 들여 인수하느냐"며 관계자에게 호통을 쳤다고 한다. 정회장은 프로야구단에 대한 개념없이 아마추어 팀을 확대 운영한다는 정도의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현대와의 협상이 결렬된 뒤 며칠 지나지 않아 럭키금성그룹의 변규칠 사장이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룹 기조실장이었던 그는 이웅희 총재를 만나 "럭키금성에서 프로야구팀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현대와의 협상이 결렬된 것을 알고왔는지 여부는 아직도 모르지만 이총재와 나는 인수자가 제 발로 나타난 것에 쾌재를 불렀다.

이총재와 나는 MBC측에 곧바로 연락해서 양측이 협의하도록 했다.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90년 1월 18일 여의도 트윈스빌딩 31층 강당에서 MBC 이건영 사장과 LG 구승회 상무가 양도양수계약 조인식을 가졌다.

곧바로 KBO는 럭키금성의 양도승인 신청서를 접수했고 이사회에서도 인수를 승인했다. 그런데 당시 이사회에서는 럭키금성의 홈구장을 잠실구장이 아닌 목동구장으로 결정했다. 럭키금성에서는 이 결정에 반발했다.

나는 서울이 워낙 대도시인데다 팬들의 숫자도 일본의 동경처럼 두개의 홈구장을 가질 만큼 된다고 판단해서 목동을 제시했다. 또 럭키금성 같은 대그룹이 목동구장을 홈으로 사용할 경우 2만명 수용 규모의 당시 구장을 분명히 증축할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그러나 럭키금성은 구본무 당시 부회장이 직접 나서서 잠실구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매스컴을 통해서 압력도 가해왔다. 당시 청와대 이연택 수석을 통해서도 잠실구장 사용 요청을 해왔다. 그리고 분당쪽에 10만평의 땅을 확보해서 야구장을 만들겠다는 시나리오도 제안했다.

그래서 결국 럭키금성이 새 구장을 지을 때까지 잠실구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결정이 내려졌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결정이 아쉽다.

당시 목동구장을 프로야구에서 맡았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크고, 현대적인 야구장으로 변모했을 것이다. 또 서울 서쪽의 야구팬들도 잠실구장까지 가기 힘들다는 이유로 야구장을 멀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용일 前 한국 야구위원회 사무총장
정리=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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