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에스더」씨 질너…매복후 Y일 거들다 참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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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62년12윌 계희호총무가 사임하고 그 후임으로 당시 대학생부간사였던 박영숙씨가 총무로 등용되었다. 그는 55년 이화여대영문학과를 졸업한후 그해부터 한국Y연합회 직원으로 취임하여 대학생부 간사로 있으면서 62년에는 1년동안 호주에가 공부룰 하고 돌아와 다시 연합회 대학부 간사로 일해왔다.
그는 69년 사임할 때까지 6년간 연합회를 자라게 했고 연합회회관건립에많은 수고를 했다. 그는 68년 한국곤학대학 교수 안병무씨와 결혼했다. 안병무씨는 67년23회 대학때 성경연구 강사로 나와 그의 학구적인 성경해실로 참가자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신앙으로 결합된 그들의 결혼은 모든 YWCA 가족들의 축복을 받았다.
69년 사임한후 현재는 연합회 실행위원으로 출판부 위원등 무급지도자로서 많은 활약을 계속하고 있다.
다음으로 총무직을 맡은이는 현재의 총무 박순양씨다. 박순양씨는 고향이 평양으로 박 「에스터」고문총무의 질녀다(큰오라버니의 딸).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다가 열두살때 서울로 와서 정신여고에 입학했다.
어머니는 재혼을 했지만 근1년동안 순진한 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딸 순양에게 알리지를 못했다. 그것은 서울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그러나 2년쯤후 어머니는 아기를 낳았고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예민한 10대소녀에게 이 사실은 너무 충격적이었지만 인격적으로 존경하는 어머니였기에 놀라움과 섭섭함이 극복되었다고 한다.
계부되는 분은 그를 친딸과 같이 생각해주었기 때문에 곧 적응이 되었다. 후에는 아버지에게 친딸과 같이 효도를 했고 부양했다.
그는 42년 이화여전음악과에 입학했다가 연성소가 되는 바람에 중단하고 짐에 있다가 해방이 되면서46년 다시 이대에 입학, 50년에 졸업했다.
그때 개국한지 얼마 안되는 기독교방송국에 취직을 하고 아직 일도 시작하기 전에 6·25가 더쳤다. 『9·28이 되어 고모님, 박「에스터」선생의 일도 궁금하기에 명동 YWCA회관으로 갔습니다. -가니까 일이 태산 같았어요. 시에선지, 구에선지는 잘 모르겠으나 고아원 아이들 씻기는 일에 손이 부족하다고 도을 사람을 찾는다기에 가보았더니 머리와 몸이 형편없는 아이들을 씻기고 옷을 갈아 입히고 있었습니다. 이 일을 1주일 하고 났더니 내가 병이 났읍니다. 그일을 그만두고 다시 Y에 나가서 피난민들을 돕는 일을 했지요. 1·4후퇴때는 좀 일찍 집 식구들과 함께 숲산으로 내려가 필승각 김인실선생님 숙소에 매일 출근하면서 대학생들을 모아 단기훈련을 시켜 위문 다니는 일을 맡아 했읍니다.
박순양씨는 이렇게해서 YWCA의 일을 하기시각했고 52년 미국으로 가서 스프림 필드대학 사회사업과에서 2년간 공부를 하고 54년 귀국하여 연합회에서 프로그램과 지도자양성부를 맡아 일을 했다.
59년 서울Y회관이 건립되었을때 서울Y는 이큰집에서 일할수있는 강력한 총무룰 물색하게 되었다. 그때 발탁된 사람이 박순양 간사였다.
해외에서 받은 훈련과 박 「에스터」씨와 함께 일하면서 배운 솜씨를 십분 발휘하여 10년동안 서울Y를 모든 면에서 발전시켰다. 옆에서 관찰하며 그의 능력에 감탄했던 한사람인 필자는 그가 정말 일을 즐겁게 한다고 생각했다. 일이 재미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일이 잘 될수 밖에 없었다.
69년 서울Y로 간지 10년되던 해연합회의 박영숙총무의 사임으로 박정양 서울Y총무 밖에는 할 사람이없다고 생각한 연합회는 서울Y와 타협한후 그를 데려왔다. 한참 일에 재미를 붙이고 회장 최이권씨와는 명콤비의 역군이었는데 그자리률 뜨고 싶지 않았지만 거절할 도리도 없었다. 또 하나는 고모와 함께 일하는것이 배우는 것은 많았지만 거북한 일도 많았다.
그는 연합회가 지금까지 다소 사무적으로 느슨했지만 그것을 많이 개선하여 모든 기록을 정확하게 하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그동안 많은 변화를 가져오는데 공헌했다.
76년 어느날 갑자기 50세 노처녀 박총무가 시집을 가게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 정말이래? 신랑은 누구래?』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한 대화가 오갔다. 신랑은 안치열박사(현 경희대총장). 미남에다 7년동안 박총무가 예스라고 할 때까지 기다렸던 사람이다.
결혼식은 성당에서 간략하게 치러졌다.
현재 박총무는 대학총징부인역과 Y연합회 총무역을 홀룽히 해내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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