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 만성골수성백혈병, 약 복용 한순간 방심도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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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영록 계명대 동산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2년 전 정기 건강검진에서 만성골수성백혈병을 발견한 50세 초반 남성 환자가 있었다. 진단을 받을 당시 본인은 물론 가족이 상당히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2세대 표적치료제를 복용한 환자는 약에 잘 적응하며 빠르게 호전됐다.

 직장에 복귀한 환자는 자신이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인지 잊을 때가 있다고 했다. 이때가 가장 경계해야 할 시점이다. 진단 초기의 긴장감이 사라지고 신체적으로 큰 불편이 없을 때 약물 복용에 태만할 수 있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만성기·가속기·급성기 또는 급성백혈병과 유사한 모세포기의 3단계 자연 경과를 밟는다. 대부분 만성기 단계에 진단되고, 질환을 조절하며 만성기를 유지한다.

약을 잘 복용할 때는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속기나 급성기로 진행하면 급성백혈병 같은 치명적인 상태로 돌변한다.

 환자가 처방을 받은 약을 제때, 제대로 복용하는 것을 ‘복약 순응도’라고 한다. 이것이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치료 성패를 결정짓는 요소다. 2세대 표적치료제는 치료 후 첫 2~3개월간의 치료 반응이 향후 치료 성적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치료 초반의 복약 순응도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치료 성적의 중요한 요소다.

 치료가 잘되던 환자가 갑자기 상태가 악화하는 경우는 대부분 복약을 임의로 중단하거나 거르는 등 복약 순응도가 떨어졌을 때다. 현재 국내에서는 1세대 치료제인 글리벡과 2세대 치료제 스프라이셀·타시그나 등이 1차 치료약으로 사용된다. 모두 효과가 좋다. 단, 환자의 동반질환이나 생활양식을 고려해 약을 선택하고 복약을 충실히 하는 것이 선결돼야 한다. 약을 제대로 챙기지 않거나 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치료 효과가 떨어진다. 게다가 약물 내성이 생기거나 만성기를 벗어나 가속기·급성기 등 위험한 상태로 치달을 수 있다.

 식사와 무관하게 하루 한 번만 복용하는 약도 권장된다. 요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아 복약 순응도를 관리할 수도 있다. 당뇨나 고혈압 등 동반질환으로 추가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 경우라면 약물 복용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최근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가 획기적으로 발전해 치료 성적이 향상됐다. 환자의 세심한 관심과 의료진과의 충분한 소통으로 치료 성적은 더 개선될 수 있다. 지금도 만성골수성백혈병으로 진단받아 걱정하는 환자와 가족이 많다. 무엇보다 치료의 희망은 복약 순응도에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도영록 계명대 동산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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