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당 사건(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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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진보당사건은 50년대 한국정치의 한 단층을 표상하고 있다. 그 단층의 하나는 분단이 가져다주는 정치의 좁은 영역이다. 이 사건은 어느새 4반세기의 과거로 역사의 뒤 안에 묻히고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 연루했던 관련자들은 지난해 죽산묘소에 비석을 세웠다.

<죽산의 무덤에 비석하나 세우는 것으로 그날의 일들도 죽산에 대한 의리 같은 것도 잊으려 했는데 역시 마무리를 짓지 못한 듯 해서…>그런 아쉬움이 그들로 하여금 줄곧 4반세기의 과거를 반성하게 하는 것일까.
진보당 사건이란 초대 농림장관이었고 50년대 이 나라 혁신세력을 이끌고 이승만의 대통령직에 도전했던 죽산 조봉암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을 말한다. 죽산의 죄목은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북괴와 야합하고 간첩과 접선한 공산주의자라는 것.
이 사건이 긴 여운을 남기게 된 것은 재판과정의 기복 때문이다.1번은 죽산의 간첩협의를 무죄로 결론지어 5년징역을 선고했다. 그러자 이 판결은 「용공」으로 규정돼 이 나라 사법사상 최초의「판결에 대한 집단 합의」라는 압력에 마주쳤다. 이로부터 이 사태는 반전되고 국가보안법의 강화가 제기되어 여야가 격돌하는 2·4 보안법 파동이란 거대한 정치 소용돌이로 이어졌다.
사형수 죽산의 형집행은 59년7월31일-.그가 서울형무소의 교수대에 이끌려 세워진 것은 그 날 상오10시45분. 마지막 절차를 끝내고 숨을 거둔 것은 11시3분.
마지막 절차란 목사의 기도와 그의 유언을 듣는 일이다. 입회목사가 그를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절교와 기도를 했을 때 죽산은「예수」가「빌라도」의 법정에 섰을 때의 성경 귀절을 읽어달라고 했다.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었느냐. 나는 그의 죽을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내려서 놓으리라…한대 저희가 큰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긴지라….」 크리스천이 아닌 죽산이 왜 이 성경 귀절을 읽어달라고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유언에서『이 박사는 소수가 잘살기 위한 정치를 했고 나와 나의 동지들은 국민 대다수를 고루 잘 살게 하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을 했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많은 사람이 고루 잘 살수 있는 정치운동을 한 것 밖에는 없다. 나는 이 박사와 싸우다 졌으니 승자로부터 패자가 이렇게 죽음을 당하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내죽음이 헛되지 않고 이 나라의 민주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했다.
그의 이 같은 최후의 모습은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뒤에 알려진 사실이다. 그 당시엔 극히 간략하게 그의 최후가 발표되었다. 당시의 한 신문은 「검찰은 예정보다 하루 앞선 31일 상오11시 조봉암씨의 사형을 집행했다. 그는 마지막 할말이 없는가 라는 집행관에게<할말은 없다>고 말하면서<내 죄는 정치활동을 한 것밖에는 없는데…>라고 말을 맷고 마지막 술한잔을 달라고 요구했다 한다」라고 보도했다. 그의 최후의 모습이 짤막한 발표로 그쳤기 때문에 풍문들이 엇갈려 뒷얘기가 많았다.
죽산의 사형짐행은 그가 진보당사건으로 구속 된지 꼭 1년6개월18일만이었다. 사건의 서막은 한 간첩사건의 배경 설명에서 올랐다. 58년1월12일 서울지검 조인구 부장검사는 대남간첩 박정호 등 10여명에 대한 공소 내용을 설명하면서 <평화통일이란 구호는 남한의 적화통일을 위한 방편으로서 대한민국의 존립을 부인하는 것이다.「북진없는 정강정책을 갖는 정당을 조직하라」는 김일성의 지령내용은 바로 진보당의 확대공작에 귀착된다>라고 했다. -그럼 진보당이 박정호사건에 관련되어 수사대상에 오르는 것이냐? 이런 기자들 질문에 대해 조 검사는<문제는 진보당이 내건 평화통일의 정의가 무엇인가를 규명한 후 그것이 북괴의 지령과 동일할 때는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몇 시간 후 신문들은 진보당간부에 대한 검거가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그 다음날인 13일 치안국은 진보당 간부의 구속을 정식으로 발표했다.
구속된 사람은 조봉암위원장,박기출·김달호 두부위원장,윤길중간사장,조규희선전간사,조규택재경간사 그리고 민혁당의 이동화정책위원장.
조 검사는<진보당 간부들이 국시에 위반되는 평화통일구호를 부르짖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7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 받아 오늘 새벽까지 그 짐행을 완료했다>고 했다. 정순석검찰총장도 부연설명에 나섰다. <이 사건은 중대사건인 만큼 치안국이나 정부공보기관을 통해 정식 발표가 있을 것이다. 이미 구속된 그들이 국시에 위반되는 점을 감행한 진보당·민혁당 전반에 관한 문제가 검토될 것이며 말 안 해도 알 수 있는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그들을 구속한 원인이 국시를 위반한 평화통일론에 있다고 했는데 조봉암씨가 얼마전 검찰에 출두했을 때<우리당은 대한민국 깃발아래서 평화통일을 실현코자 하며 이 같은 노선에 대해서는 이대통령께서도 이미 외교진용을 동원해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중언했던 사실에 비춰 그 때의 통일론과 이번에 구속요건이 된 평화통일론의 진의간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이런 기자들의 질문에 정총장은 『2∼3일 후에 발표하겠다』라고 할 뿐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그 날 서정학치안국강의발표가 훨씬 사태를 명백히 설명했다. 서국장은<이들 구속된 진보당 간부는 이미 송청한 박정호·정우갑·허봉등 간첩사건을 수사중 진보당간부의 국가보안법위반혐의가 뚜렷해져 구속한 것>이라면서<국체를 부인하는 평화통일론 조사 후에 발표하겠다>고 했다.
마침 시기가 5월로 예정된 국회의원총선거를 4개월 남짓 앞둔 때였다. 이래서 기자들은<이 사건은 진보당의 총선거 입후보를 막기 위해 검거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물었다. 이에 대해 서치안국장은<국회의원 입후보를 막기 위해 막연히 취해진 사건이라면 재판에서 무죄가 될 것이고 그랬을 때 그들의 인기는 대단할 것인 즉 이런 일을 증거 없이 할 수 있는가. 더우기 국제적으로도 알려져 있는 조봉암씨를 입건한다면 국제여론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당국의 말을 뒷받침하듯 신문은 죽산이 북괴와 야합 내지 내통했다는 보도를 함께 실었다. <유력한 경찰소식통에 의하면 죽산이 북괴에 보낸 친서가 오래 전에 당국에 압수되어 그동안 친필여부 등 필적감정이 취해진 결과 뚜렷한 증거까지 얻게되어 사건에 착수했다한다>라는 보도가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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