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흔한 소재 무리없이 소화|타감 물씬 언어 앳된『8월에서면』, 감각적이나 유연함 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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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시조는 룰을 지닌 율의시다. 이를 그냥 시조의 리듬이라고 해도 좋겠다. 한데 시조의 리듬 속엔 순수한 한국의 시를 수용하는 그릇으로도 훌륭한 구실올 하고 있다. 때문에 지나친 시도나 첨단적인 현대성을 부여하기엔 부적당하다. 따라서 상과 언어가 결이 삭아야 시조로서의 맛이 나게 되어있다.
하기에 좋은 시조는 잘 익은 술맛과 흡사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같이 좋은 시조를 짓기 위해선 시조의 리듬을 오랜 시일을 두고 몸으로 익혀야만 가능해진다.
적어도 10년 20년이라고 하는 노력의 세월을 동반해야 더욱 확실해진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가난」은 생활시조로서 흔한 소재를 무리없이 소화하여 뛰어난 평범을 보이고 있다. 물씬한 생활정감이 뭉클한 감동을 주는 가작이다. 잘 익은 리듬이다.
「향수」의 작자는 추억을 잘 풀고 있다.
첫 수의 경우, 종장에선 비약이 있어야 할 듯. 「굉울음」은 다른 것으로 바꿀수도 있을텐데….
「산아이」는 무심히 닿는 시의 시선이 깊이를 더하고 있다. 중장에 머문 시선이 그것이다. 「조약돌 무심히 쥐고 산을 베고 잠든…」과 같은 중장이 돋보인다. 이를 터득이라고 말하는듯.
「노인송」은 때깔을 벗고 있다. 둘째 수가 돋보인다. 「새물내 것고대에 풀향기 스며들고」같은 귀절은 뛰어나다 하겠다. 그러나 희망과 같은 한문은 어울리지 않는다.
다음은 단수를 언급해 보련다.
「8월에 서면」은 언어가 퍽 앳되다. 그만큼 어리고 싱싱하게 느껴진다. 감각적인 면에 이끌렸으나 앞으로는 유연함을 익혀야 하겠다.
「입추」의 작자는 능하나 쉽게 쓰려는 흠이 있다. 이 작품에선 중장의 「석양은 가을 한자락 깔아놓고 떠난다」가 이끌린다. 종장의 중요성은 이 같은 것이다. 「연꽃」은 염주(개구리울옴), 사리(이슬), 열반(햇살) 등으로 장을 바꿔가며 연꽃을 승화시키고 있다.
다소 의식적이긴 하나 단수로서 압축을 잘 해내고 있다. 이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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