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준의 세컨드샷] 골프 거인의 충돌과 풍자의 시대

중앙일보

입력

골프의 두 거인이 충돌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85세의 골프 기자 댄 젠킨스(미국)다.

우즈는 젠킨스가 골프다이제스트 잡지에 쓴 ‘우즈와의 (가짜) 인터뷰’라는 기사에 대해 발끈했다. 플레이어스 트리뷴이라는 웹사이트에 그는 “사실도 아니고 재미도 없다”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우즈는 “나에 대한 잘못된 보도에 그냥 넘어갔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다. 이것은 벨트 아래를 가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젠킨스도 거물이다. 골프채가 아니라 펜으로 먹고 사는 사람 중 세 명이 골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는데 살아 있을 때 들어간 사람은 젠킨스 혼자다. 그는 골프뿐 아니라 미국 스포츠 기자 전체의 부러움을 받는 인물이다. 60여 년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직접 쓰지 않는다. 말만 하고 비서가 받아 친다. 진짜 ‘기자님’이다.

젠킨스는 메이저대회 취재를 221번 했다. 선수의 출전 횟수로 가장 많은 건 잭 니클라우스로 163번이다. 젠킨스가 58번 더 참가했고 앞으로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즈는 72회 참가했다.

마스터스 기자실은 지정석을 운영한다. 중앙일보 자리 세 칸 앞이 그의 자리다. 고령인데도 젠킨스는 아직도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물고 있을 때 그의 촌스런 헌팅캡은 시가를 문 혁명가 체 게바라의 베레모처럼 보이기도 했다. 2012년 디 오픈 챔피언십 때에는 텐트가 들썩거리는 엄청난 바람 속에서도 기어이 담배에 불을 붙여내는 기술로 필자를 놀라게 했다.

날카로운 풍자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자기 자신도 비꼰다. 담배를 피우면서 그는 자신의 손떨림에 대해, 끊지 못하는 담배에 대해, 무뎌지는 필력에 대해 시니컬한 농담을 하곤 했다.

우즈-젠킨스의 충돌 사건은 우즈의 과민반응이라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조롱하고 씹어댈 수 있는 곳이 미국이다. 스포츠 스타도 예외가 아니다. 젠킨스는 가짜 인터뷰라고 명확히 밝혔다.

그래도 젠킨스 편을 들고 싶지는 않다. 그는 인종차별적이다. 젠킨스는 2009년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양용은과 중국음식점을 비교하는 농담을 했고, LPGA 투어의 한국 선수들을 두고 “영어를 못하는 선수가 우승한다”, “방콕이나 필리핀에서 왔을 수도 있는데 내 생각엔 그녀가 한국인 같다”라는 등의 트위터 멘션으로 항의를 받았다. 그는 벤 호건과 아널드 파머를 흠모하는 듯하고 타이거 우즈에게는 처음부터 삐딱했다.

더 아쉬운 건 재미가 없다는 거다. 젠킨스는 무소불위의 선수 권력인 타이거 우즈, 잭 니클라우스가 아프도록 강펀치를 날리곤 했는데 이번 펀치는 힘이 없다. 우즈의 이혼 사건, 짠 팁, 잦은 해고 등 오래전 얘기를 재탕한데다 풍자가 세련되지도 않았다. 우즈가 “재미 없다”라고 한 말이 이해가 된다. 같은 스포츠 기자로서 힘이 빠진 노병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번에 우즈가 글을 기고한 플레이어스 트리뷴이라는 웹사이트도 눈길을 끈다. 선수들이 기존 미디어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내겠다는 사이트다. 뉴욕 양키스에서 은퇴한 데릭 지터가 만들었다. 저널리즘에 또 다른 세계의 문이 열린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대중이 원하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젠킨스가 나이를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게 대세라면 풍자의 시대와는 안녕이 되는 것이다.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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