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전통 따른 파드 사우디 국왕 장례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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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이맘 투르키 사원에서 2일 열린 파드 국왕의 장례식에서 왕자들이 부왕의 시신을 나무 들것에 메고 사원으로 가고 있다. [리야드 AP=연합뉴스]

석유 부국이자 이슬람 종주국 사우디아라비아는 2일 세상에서 가장 조촐한 국왕 장례식을 2일 거행했다. 84세의 나이로 1일 서거한 파드 빈 압둘 아지즈 국왕의 장례 의식이 이날 수도 리야드의 이맘 투르키 사원에서 검소하게 치러졌다. 이슬람 경전인 코란과 예언자 마호메트의 언행을 엄격하게 따르는 이슬람 원리주의(와하비즘)의 장례 절차에 따른 것이다. 사우디의 건국이념이기도 한 와하비즘은 이슬람 전통의 철저한 준수를 기본 덕목으로 삼고 있다.

오후 3시30분(현지시간)에 시작된 파드 국왕의 장례식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맘 투르키 사원에 먼저 도착한 압둘라 새 국왕 및 사우디 지도부는 전 세계에서 도착한 정상들과 대표단의 조문을 받았다. 모스크 안에는 수천 명의 왕족.조문사절.민간인, 그리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경찰들로 가득 찼다.

오후(아스르) 예배가 끝난 직후 파드 국왕의 시신이 모스크 안으로 들어오면서 다시 2분여의 장례 기립예배가 진행됐다. 그리고 모든 의식이 끝났다. 압둘라 국왕이 조문사절에 감사를 표하는 동안 파드 국왕의 시신은 앰뷸런스에 실려 장지인 알우드 공공묘역으로 옮겨졌다.

180억 달러의 재산을 남긴 것으로 알려진 파드 국왕의 시신은 이날 관에도 담기지 않았다. 시신은 양탄자와 나무로 만든 들것 위에 엷은 갈색 '아바아(이슬람식 겉옷)'에 싸여 파이잘 병원에서, 모스크, 그리고 장지로 이동했다. 붉은 색 바둑판 무늬가 있는 '쿠피야(남자 머리두건)'를 쓴 파드 국왕의 왕자들이 조용히 그의 시신을 매장했다.

리야드 중심부에 위치한 알우드 공공묘역은 사우디 국왕들과 일반인이 함께 묻혀 있는 곳이다. 화려한 비석이나 큰 봉분도 없고 다만 각각의 흙더미 앞에 30cm 높이의 이름을 적은 돌이 세워져 있을 뿐이다. 이는 묘소 참배 등 다신주의적 관행을 배격하고 금욕주의적 신앙 생활을 강조하는 와하비즘에 따른 것이다. 파드 국왕을 추모하는 수천 명의 사우디 시민들이 모스크와 장지에 모였지만 우는 사람도 없다.

이날 장례식엔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을 포함한 이슬람 및 아랍권 36개국 지도자가 참석했다.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 영국의 찰스 왕세자, 미국의 조문사절단 등 서방 인사들은 장례식이 끝난 뒤 왕실을 방문해 조의를 표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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