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공교포 조국 방문하면 북한에도 자극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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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번 공산권 거주 동포의 자유왕래 보장은 「우리도 할 테니 너희도 하자」는 조건이 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만이라도 먼저 대문을 활짝 열어 놓겠다는 뜻입니다.』
손재식 통일원장관은 북한을 포함한 공산국가에 살고있는 모든 동포에게 자유왕래를 보장하겠다는 전두환 대통령의 8·15경축사 취지를 한마디로 이와 같이 설명했다.
그동안 남북한 최고당국자회담제의(81·6·5),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제의(82·1·22), 20개 시범실천사업제의(82·2·1), 남북한 고위대표회담제의(82·2·25) 등 우리측의 끊임없는 대화 제의는 북쪽으로 부터 매번 거부되거나 묵살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북한측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관계없이 우리가 일방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획기적』이라는 얘기다.
『이번 조치는 20개 시범실천사업 중 「해외동포들의 조국방문을 공동으로 주관, 쌍방지역을 자유로이 방문토록 한다」는 제의를 우리 쪽에서 먼저 실천하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북한측의 상호조치를 요구했던 종래의 우리제안을 적극적으로 진전시킨 과감한 조치로 봐야합니다]
우리 쪽의 일방적인 문호개방조치가 그동안은 스포츠·학술분야에서는 몇 차례 있었다. 북한측 배구코치조청(73년8월2일), 흉부기관회의초청(77년7월30일), 사격선수권대회초청(77년6월30), 비적성 공산국가 국민입국허용(78년2월24일), 북한농구·축구단초청 등과 함께 소·중공거주 동포들에게 모국과 서신 교환을 할 수 있도록 해왔다.
특히 최근에는 중공교포가 중공여권을 갖고 홍콩주재 우리 영사관으로부터 비자를 받아 한국을 방문했던 사실은 우리측 조치의 신뢰성을 입증한 사례라고 손 장관은 강조했다.
『우리가 기본 원칙을 천명한 이상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도 단행해 나가겠습니다. 공산권거주 교포들의 방문에 장애가 되는 법령이나 제도가 있다면 즉시 고쳐 나갈 생각입니다.』
이번 조치가 북한동포와 그 밖의 공산권 동포를 모두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북한의 완강한 자세에 비추어 실제 왕래가 가능한 건 북한 이외의 공산권동포들일 것 같다.
그 중 대종을 이루게 될 것은 아무래도 2백여만 재중공 교포와 40만 재소 동포.
따라서 중·소 당국의 적법절차를 밟아 한국에 오겠다는 동포는 언제든지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우리의 자세인 셈이다.
『중·소 교포만이라도 자유왕래가 이루어진다면 남북대화의 돌파구가 마련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인접국가의 교포들과 교류가 이루어지면 북한동포들에게도 자극제가 되어 궁극적으로 북한동포의 방문까지도 연결되는 기초가 되었으면 합니다』
내무관료만으로 일관했던 손 장관은 전혀 다른 분야를 맡아 경력의 갭을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보이지 않은 노력을 해왔다.
지금도 손가방이 모자라 항상 보따리를 따로 싸들고 집으로 간다. 집을 아예 제2집무실로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정열로 부임하자마자 1·22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 20개 시범실전사업, 남북한 고위대표자 회담제의 등 큼직한 일들을 무난히 치러냈다.
통일원의 업무를 정책개발과 교육·홍보로 못박고 스스로 각종 강연회의 강사를 자청해 고대·건대 등 8개 대학 순회강연, 교육기관·종교단체특강, 지도층간담회, 일본지역 순회강연회 등 8개월 동안 80회 이상 강연을 했다.
『강연회마다 청중들의 공통된 질문은 「정말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더군요. 그때마다 「당장은 어렵지만 장기적으로는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사회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신념체계도 변합니다. 북한이 언제까지나 폐쇄사회를 지향할 수 없는 내·외적인 변화가 반드시 오게되고 그때가 바로 우리 민족의 통일열망이 결실을 거두는 기회가 될 겁니다.』 바로 「변화의 원리」로 그는 통일에 대한 그의 확신을 설명한다.
『현재 북한사회는 김정일 세습체제 구축 때문에 몹시 불안정한 상황 속에 놓여 있어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김정일을 「경애하는 지도자」 「당중앙」 등 은유적인 표현을 했는데 지금은 「김정일 각하」라고 까지 세습작업이 표면화 됐어요.
김정일에게 권력이 세습되어지면 권력정착을 위해 대남 전략은 더 경직화돼 모험주의 노선을 취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으로 북한내부의 돌발사태로 대화의 찬스가 의외로 빨리 올 수도 있지요』
취미가 독서랄 정도로 학구적인 손 장관은 과거에 대학에 나가 강의도 했고, 「현대지방행정론」이라는 저서를 갖고 있다. <문창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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