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은 헌법 파괴" 박근혜 대표, 노 대통령 제안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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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1일 서울 염창동 당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연정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1일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 측의 대연정 제의를 단호히 거부했다. 박 대표는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해 "지금 이 나라를 구하는 길은 연정이 아니라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새로운 각오와 바른 정책으로 도탄에 빠진 민생부터 살려내는 것"이라며 연정 반대를 공식화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을 향해 "국민을 혼란으로 몰아가는 연정 논의를 즉각 철회하고 남은 임기 동안 민생경제 살리는 일에 전념하라"고 촉구했다.

박 대표는 이어 연정 구상 반대 이유를 짚어 나갔다. 그는 먼저 "선거법 개정을 위해 대통령의 권력까지 내놓겠다는 것은 실로 무책임하고 헌법 파괴적 생각"이라며 "야당과 흥정하는 도구로 쓰라고 국민이 대통령으로 선출했다고 생각한다면 헌법 파괴를 넘어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또 "여소야대를 탓하는 것은 스스로 무능과 무책임을 자백하는 것에 불과하며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너뜨리는 발상"이라며 "4월 재.보선 이후의 여소야대는 국민의 뜻인데 이를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국민들이 비정상이란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과거 중선거구제를 해봤지만 지역주의 해소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 경험이 있는 만큼 선거법을 개정하면 지역주의를 해소할 수 있다는 대통령의 발상에 동의할 수 없다"며 "지역주의 해소의 근본 대책은 여야 모두 정책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밝혔다.

거듭된 연정 제의를 '무시 전략'으로 일관해 온 박 대표가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까지 열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은 끊임없이 제기되는 정부 여당 측의 연정론 공론화 시도에 쐐기를 박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박 대표는 "대통령이 국사는 제쳐두고 장문의 편지까지 쓰면서 다섯 번씩이나 연정을 말했기 때문에 이를 검토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내 동요 조짐을 조기에 잠재우려는 시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선거구제 개편을 전제로 한 연정 제의가 내각제 도입을 시사하는 것인 만큼 영남권이나 일부 중진 의원들 사이에서 호응이 있을 수 있다는 관측 때문이다.

정권 탈환의 의지와 자신감이 담겼다는 분석도 있다. 박 대표는 "한나라당은 뼈를 깎는 혁신으로 다음 대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고자 하며 그때까지는 국민이 부여한 야당의 길을 가겠다"며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나눠 주는 권력은 받을 의사가 전혀 없고 정권을 교체할 권리는 오직 국민에게만 있다"고 말했다.

거듭된 연정 '구애'를 거절당한 열린우리당은 실망감을 나타내며 한나라당에 대해 "지역주의 집착당의 모습을 버리지 못했다"(장영달 상임중앙위원)고 비난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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