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양주「주령 12년」싸고 티격태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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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산위스키 병에 커다랗게 붙어있는「주령 12년」-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인가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심의를 하고있다. 12년짜리 위스키가 심판대에 오른 것은 한국에 위스키원액을 공급해온 영국의 스카치위스키협회 (SWA) 가 주한 영국대사관을 통해 주령 12년은 과대선전이니 이를 시정해주도록 정부에 요청한데서 발단되었다.
SWA는 한국의 위스키가 12년짜리 원액을 약간 섞은 술이지 결코「12년짜리 위스키」는 아니라고 주장, 만약 이러한 표시를 시정하지 않으면 원액공급을 중단하겠다고까지 했다.
공정거래실이 그동안 관계 회사들의 위스키제조과정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3개회사 제품은 영국에서 수입된 12년짜리 원액 30%에 국산주정 70%를 섞은 것. 국산주정은 만든 지가 6개월 이하짜리. SWA의 주장대로 한다면 우리나라 위스키의 주령은 0 (영) 년. 12년짜리 원액에 1년짜리를 섞을 경우 그 양에 관계없이 최하위 원액연수를 표시해야 한다는 것이 SWA의 규정이다.
이렇게 되자 위스키 3사는 술병에 영문으로 표시했던「12년짜리 원액을 섞은 위스키」를「12년짜리 수입원액과 국산주정을 섞어 만든 것」으로 다소 완화해서 표시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는 표시문 중「12년」이라는 숫자는 크게, 나머지 부문은 깨알같이 써있어 소비자에게는 술 전체가 12년짜리인 것처럼 오인될 소지가 많다고 지적, 이를 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위스키의 영문표시에 대해「사실」대로 적고「12년」이라는 글자크기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지만 관계 회사들은 이를 선전전략상 필요한 것이며 결코 소비자를 속이는 것은 아니라고 맞서고있다.
수입한 원액이 국내에 도착하면 국세청이 봉인을 확인한다. 이들 회사들은 12년짜리 원액 30%에 국산주정 70%를 섞기 때문에 국세청은 이 분량에 해당하는 위스키 생산량을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관계 회사들이 국산주정을 더 타서 12년짜리 원액함량을 줄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시중에 팔리고있는 위스키가 정말 12년짜리 원액 30%를 포함한 것인가에 대한 샘플조사는 한번도 실시된 적이 없다.
작년에 소비된 국산위스키는 모두 7백ml짜리 45만 8천 병. 시장점유율은 백화의 베리나인골드와 베리나인그린이 50.9%로 단연 앞서고 다음 진로의 길벗로얄과 길벗에이스가 45%, 작년 8월에 처음으로 시장에 뛰어든 OB시그램의 블랙스톤은 4.1%였다.
그러나 금년 들어선 블랙스톤이 시장을 넓혀 점유율 (l∼7월) 이 31%로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위스키 판매전이 가열됐고 이것이 급기야 주령 12년 싸움으로까지 비화된 것이다.
이번 싸움은 워낙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어 공정거래위원회도 선뜻 결론을 못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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