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2030 세상 읽기

솔로여, 도심 속으로 휴가를 떠나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짧은 인생을 통틀어 '휴가'라는 단어를 사용한 적이, 그에 합당한 시간을 보낸 기억이 전무한 것 같다. 당연했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중 거의 대부분을 휴가처럼 지냈으니까. 그런 처지에 남들 휴가 떠난다고 덩달아 달뜨는 것처럼 민망하고 스스로 안쓰러움을 자처하는 일은 없는 것 같다.

몇 번인가, 휴가 시즌에 바다나 강으로 떠난 적이 있긴 있었다. 모두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에 있었던 일이었다. 그러나 또렷한 추억은 없다. 그것 역시 당연했다. 그땐 친구들과 함께 '개와 인간의 아슬아슬한 경계지점'까지 술을 마시고 또 마셔댔으니까. 옆을 둘러보면 언제나 얼굴은 인간인데, 몸은 진돗개가 되어 사방을 어슬렁어슬렁 기어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나도 길 수밖에. 그게 만국의 모든 젊은이들이 휴가지에서 행하는, 만고불변의 '슬로건'처럼 여겨졌던 시절이었다.

삼십대에 접어드니 이젠 그런 친구들조차 없어졌다. 일가를 이룬 친구들은 일년에 한 번 돌아오는 천금 같은 휴가를 결코 나와 같은 솔로들과 지내려 하지 않았다. '휴가는 가족과 함께'. 이것이 친구들의 '슬로건'이 되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아무리 폭염이 몰아닥쳐 와도 인내하며 도시를 사수할 수밖에(아아, 그렇다고 혼자서 해운대나 망상을 갈 순 없지 않은가. 그건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나지 않는가). 그게 솔로들의 운명인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여기서 "뭐 괜찮아요, 우리에겐 독서가 있잖아요. 추리소설을 읽으세요"라거나, "화랑이나 공연장을 가보는 것도 좋지요"라는 교과서적인 말을 하고 싶은 의사는 전혀 없다. 그건 나와 맞지 않게 너무 고상해서 때론 작위적인 냄새까지 나는 휴가 방법이니까.

좀 부끄럽고 창피한 고백이지만 나는 폭염이 맹위를 떨칠 땐 동네 인근 아파트 공사 현장이나 신축 건물 공사 현장 주위를 맴돈다. 그리고 그곳에서 비계용 파이프를 옮기거나 '사포도'를 나르는 인부들의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훔쳐본다. 그러면 생의 어느 한 기억이 겹쳐져 온몸이 서늘해지곤 한다. 그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본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그깟 더위 따위는, 하,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되어 버린다.

출근 시간 여의도 빌딩군 앞 벤치에 앉아 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곳에서 연방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뛰어다니는 직장인들의 허옇게 질린 얼굴들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일. 아, 남의 불행이, 타인의 고행이, 너의 행복이냐고, 그건 너무 비도덕적인 휴가 방법이 아니냐고 나를 욕해도 좋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내가 이 도시에서 버티는, 이 도시에서 체득한, 휴가인 것을.

그 벤치에 느슨하게 앉아 당신들의 동료를, 당신들의 상사를 바라보아라. 그리고 그곳에서 당신을 찾아보아라. 휴가란 원래 일상에서 일탈하는 일이니 자기연민은 어쩔 수 없는 일. 하긴 자기연민도 없는 시절이니.

이기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