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교육의 재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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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교과서의 역사왜곡문제는 국내적으로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 파문은 결국 일본정부 당국이 성의를 가지고 자기네 교과서의 왜곡부분을 시정하면 가라앉을 것이지만 우리 자신으로서도 이 기회에 자계와 반성을 통해 문제점들을 가리고 시정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겠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우선 이번 파동의 책임이 근원적으로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의 주체적 정신을 확고히 세우고 우리의 민족역량을 결집해서 외세와 떳떳이 경쟁할 수 있는 처지에 있다면 저들이 감히 그같은 문제를 일으킬 수조차 없었으리라는 것이 분명한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이 최소한 민족수난의 역사를 뼈저리게 인식하고 다시는 그같은 민족적 수모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지고 민족적 결속을 통해 자기충실화를 이룩할 수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 점에서 주체적 자각과 실력배양의 노력이 없었던 우리 자신을 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국토분단의 현실 속에서 반토막이나마 경제발전과 민주·정의·복지사회를 구현한다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 가운데서도 민족주체의식을 철저히 확보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이기도 하다.
국사연구와 교육의 충실화는 그래서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는 독립운동사나 일제식민사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부족하고 그 교육도 철저하지 못했음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등의 활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 업적은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식민지 잔재를 털어버리지 못한 현실적 여건의 장애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역사기술의 엄정성에 대한 정부나 사가의 양심적 역사정신의 부족에도 원인이 있었다.
물론 그간에도 식민사관을 탈피하려는 학자들의 학문적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흔히 국사연구가정치적 현실과 결부되어 맹목적 복고주의, 영웅주의, 국가주의에 치우치는 경항도 없지 않았다.
그 부실한 연구를 기반으로 한 국사교육이 부실할 건 물론이다.
용어의 통일이나 교과과정 상의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 문제이다.
국사교과서 기술의 정신이 우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식민사관의 탈피는 좋다 하더라도 그에 대치된 주체적 민족사관이 사실 자체의 엄밀성을 흔히 감추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자랑스런 부분은 물론이지만 부끄러운 부분도 철저히 분석해 가르쳐야 민족사의 창조적 발전은 가능한 것이다.
외세의 침략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 민족 자체의 역량, 저항의 한계, 지배계층의 만성적 부패와 반역사적 자세가 철저히 비판되지 않으면 안된다.
외국교과서의 역사왜곡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역사서술태도의 개선도 있어야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독립운동사를 포함한 국사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사회교육은 더욱 중요하다.
그 점에서 우리의 자랑스런 민족항쟁사의 기록인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 기념행사가 어느 사이엔가 국가적인 행사나 학생행사의 차원에서 벗어나 흐지부지 기록에서 사라지고 있음은 유감이라 하겠다.
물론 20세기 후반의 국제적 현실에서 국가간의 선린우호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또「지구가족」의 개념이 팽배한 이 시대에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반드시 옳다거나 이로운 것이라 하긴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엄연히 민족국가를 단위로 해서 생활을 유지해온 것도 사실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 분명한 만큼 우리 자신의 민족적 정체를 확인하는 노력은 불가피하다.
그 점에서 이 파문의 과중에서 우리의 민족적 자각을 다시 환기하며 아울러 우리 자신의 역사인식에 대한 반성과 시정을 촉구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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