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뒤엔 레코드점 하겠어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실비어·스위니」가 한국에 다시 왔다. 79년 4월, 아시아지역에선 처음으로 서울에서 개최됐던 제8회 세계 여자 농구 선수권대회에서 최우수선수 (MVP)로 주목을 끌었던 캐나다의 「실비어·스위니」가 3년2개월만에 당시의 백넘버였넌 11번을 그대로 단채 다시 한국을 찾은 것이다.
금년 나이 25세로 캐나다팀에서 고령자축에 든다는「스위니」는 3년전의 세계여자농구 선수권대회에서 최우수선수 (MVP) ,베스트5(득표1위)를 차지하며 대학 최고의 히로인이 되어 한국농구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었다.
한국여자농구가 세계로 비약하기 위해 큰 마음을 먹고 79년 잠실체육관 개장기념으로 마련한 세계여자농구선수권 대회는 한국이 서전에서 캐나다와 대결,「실비어·스위니」라는 흑인선수의 경탄스러운 플레이로 뜻밖에 76-63으로 패배, 충격을 받았었다.
이 패배로 한국은 결국 준우승했고 미국이 우승, 캐나다는 3위를 했지만「스위니」의 플레이는 미적 율동으로 모범이 됐었다.
「스위니」의 캐나다대표팀은 80년 5월 불가리아에서 개최된 프레 올림픽에서도 한국대표을 77-71로 이겼고 이어 82년 6월 대북에서의 제6회 존즈컵 국제농구대회에서도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미국을 70-67로 제압, 우승을 차지했었다. 이 대회에서도 「스위니」는 대회 토너먼트 심사위원회가 선정한 베스트 12중에서 최고득점으로 선정됐었다.
그러나 존즈컵 대회 이후 그녀를 괴롭히던 무릅연골의 이상이 재발, 가벼운 재수술을 받기도 했다.
어릴 적 꿈이 변호사가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로젠던대 (온테리오주) 법과를 선택했었으나 3살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를 버릴수 없어 농구냐 피아노냐하는 고민도 했었다는「스위니」는 84년쯤 은퇴를 하고 레코딩스튜디오(녹음실)를 경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래서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원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다.
『「실비어」는 말 그대로 탤런트다. 항상 쾌활할 뿐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고 동료를 사랑한다』고 서두를 꺼낸 「매크레」 캐나다코치는『문제가 있다면 건강이 나쁘다는 것이다. 선수로서 건강상태에 따라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 큰 결점일 수도 있다』고 전제, 『그러나 큰대회에서는 승부에 강한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때문에 캐나다는 그녀를 믿는다』고 칭찬한다.
「매크레」 코치의 말대로 10번 「엡·스미드」와 함께 캐나다팀의 「원·투·스트레이트」역활을 훌륭히 해내고 있는 「스위니」니 유일의 흑인선수.
인천에서 가진 한국선수와의 1차전에서는 73-63으로 패했으나 2차전 (2일·춘천)에서는 전반 44-39, 후반 31-27, 토틀 75-66으로 낙승을 거둔 캐나다팀은 두게임 모두 「스위니」를 넣었다 빼었다 하는 교체작전을 쓰고 있다.
『단 한사람 (박찬숙)을 중심으로 한 어씨스트 위주의 팀플레이가 매우 훌륭하다. 아시아팀 중에서는 단연 최고팀이다.』라고 2차전을 끝낸 소감을 밝히는 1m86㎝의 「실비어·스위니」.
『3년만에 다시 보아도 한국사람들은 여전히 친절하고 불고기는 여전히 맛있다.』 서슴치 않고 얘기하는 「스위니」는 『결혼은 생각도 안 해 봤다.』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