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노조시대] 3. 파업, 길고 과격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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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때를 보여줘야 회사가 정신을 차린다. "( I금속 노조)

"1백%를 모두 요구하는 노조와는 얘기 못한다. "(M호텔 경영진)

I금속과 M호텔은 격렬한 노사분규 끝에 얼마 전 문을 닫은 회사다. I금속은 1백50일 간의 장기파업으로 경영 기반이 무너졌다.

M호텔에선 노조원들이 외국인이 드나드는 호텔 로비에서 청국장을 끓여먹거나 꽹과리를 쳐대 손님들을 내쫓았다. 노사가 평행선을 달리다가 결국 노조는 일터를, 사측은 회사를 잃고 말았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노사분규로 인한 생산 차질액은 1조7천1백77억원, 수출차질액은 6억8백만달러다.

노동쟁의로 인한 근로손실 일수도 지난해 1백58만일로 1년새 45.9%나 늘어났다. 이 때문인지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해 11월 세계경쟁력 보고서에서 한국의 노사협력 순위를 80여개국 중 55위로 매겼다.

노민기(盧民基) 노동부 노사정책국장은 "법의 테두리 내에서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힘에 의한 대결로 치닫는 관행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상호불신에서 비롯된 파업은 오래 끌고 과격해지기 쉽다. 분규가 한번 생기면 평균 30일간(2002년 기준) 지속된다. 서로를 못 믿으니 교섭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보다 '일전불사(一戰不辭)'로 흐르는 것이다.

게다가 노조의 파업결정이 너무 쉽게 이뤄져 단시간 내 극단 대립으로 치닫는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의 경우 찬반투표에서 참가자의 50%이상 찬성하면 파업이 결정된다. 독일의 경우 대부분 75%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그만큼 지도부가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모 기업 노무담당 간부는 "조합원의 적극적 동조 없이 파업에 들어가다 보니 노조가 회사에 타격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장실 점거나 기물파손 등 격렬행동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번 파업이 일어나면 법이나 원칙은 설 자리를 잃는다.

노조는 대개 파업 중의 임금을 나중에 일괄해 받아내고 있으므로 "파업을 해도 손해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 내 계파 대립이 선명성 경쟁으로 번지면서 의식적으로 과격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모 금융회사 임원은 "요즘 노조에 '법대로 하자'고 하면 '막 가자는 거냐'고 더 대든다"며 "이래서야 무슨 원칙이 지켜지겠느냐"고 했다.

물론 노조 측은 사측의 탄압을 비난한다. '노조는 안된다'는 불신감에서 시작해 실현 가능성이 없는 손해배상청구소송.가압류 신청을 내는가 하면 '구사대'까지 동원한다는 것이다. 최근 두산중공업.대우자동차판매에서 보듯 사측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노조활동을 방해하는 사례도 많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검찰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위해 노동사범에 대한 불구속 수사를 확대하고 업무방해죄 적용에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고 최근 밝혔다. 노조는 반기지만 재계는 불안해하고 있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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