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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경제혁신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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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종수
김종수 기자 중앙일보 부장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의 역량은 역시 국내에 있을 때보다 해외에서 더 빛을 발하는 모양이다. 최근 중국·미얀마·호주 등을 숨가쁘게 돌며 벌인 8박9일간의 마라톤 해외순방 외교의 결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 보인다.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아세안(ASEAN)+3(한·중·일) 정상회의, G20 정상회의에 잇따라 참석해 자칫 미국과 중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외톨이가 될 뻔했던 한국의 존재감을 되찾은 것은 정상외교의 큰 성과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번 해외순방에서 거둔 외교적 성과보다 더 큰 성과는 경제분야에서 나왔다. 순방기간 중 한·중 자유무역협정(FTA)과 한·뉴질랜드 FTA라는 굵직한 경제협상을 마무리 지었고, 한국의 경제혁신계획에 대한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박 대통령 스스로도 이러한 성과에 만족했는지 귀국길에는 순방외교의 경과를 언론에 소상히 설명하기까지 했다. 해외순방에 대한 여론의 평가도 후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조사한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49.1%로 순방 전보다 0.4%포인트 오른 반면 부정적인 평가는 1.3%포인트 떨어진 43.8%를 기록했다. 한마디로 효과 만점의 해외순방이었다고 자부할 만하다. 특히 박 대통령이 이번 순방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한 대목은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한국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회원국 성장전략 가운데 최고라고 평가한 점이다. 3개년 계획이 계획대로 이행됐을 때 성장률(GDP 증가율) 제고효과가 4.4%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으로선 야심차게 선보인 경제혁신계획이 국제기구로부터 최고라는 찬사를 받은 데다 그대로만 하면 실제로 높은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국제적인 공인을 받았으니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다.

 그런데 이런 후한 평가와 찬사가 왠지 실감이 나질 않는다. 올해 성장률도 당초 계획보다 낮은 3.5%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내년 성장률도 정부가 목표치로 잡은 4%에 못 미칠 것이란 관측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주요 경제예측기관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2.9%부터 4.1%로 다양하게 내놓았지만 대체로 3.7% 언저리에 머물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예측기관들의 성장률 전망치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성장률은 IMF와 OECD가 ‘이론적으로’ 계산한 경제혁신3개년 계획의 성장률 제고효과와는 사뭇 동떨어진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번에 국제기구로부터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이미 시행 중이다. 박 대통령이 신년담화에서 윤곽을 발표한 후 3월에 3대 전략과 10가지 중점과제, 59개 세부실행과제를 확정했다. 기초가 튼튼한 경제, 역동적인 혁신 경제, 내수·수출이 균형잡힌 경제, 그리고 통일시대 준비 등이 핵심 전략이다. 그런데 이 모든 전략과 계획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어느 정도의 성과를 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안종범 경제수석은 최근 공공부문 개혁과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관행 개선, 사회안전망 확충, FTA 체결 확대, 주택시장 정상화, 규제개혁을 통한 투자여건 개선 등을 3개년 계획의 구체적인 성과로 꼽았다. 그런데 그게 경제활성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이 없다. 손에 쥔 성적표는 계획보다 낮은 성장률과 낮은 고용률, 살아나지 않은 주택경기, 침체된 내수와 둔화된 수출뿐이다. 국민들이 경제혁신의 성과를 실감할 게 별로 없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경제혁신계획의 구체적인 성과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데 대해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계획 발표 직후 터진 세월호 참사로 온 나라가 석 달여나 마비상태였고, 엔저와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 등 대외 악재까지 겹쳐 성과를 내기가 어려웠노라고. 충분히 이해할 만한 해명이다. 그러나 모든 계획이 그렇듯이 계획대로 되는 법은 없다. IMF와 OECD도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계획대로 이행된다면’이란 조건을 달아 최고점을 주었을 뿐이다. 즉 계획을 잘 세웠다는 것이지 계획대로 된다는 보장을 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학습계획을 잘 세웠다고 성적이 좋아지진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결국 실천이 문제다. 여기서는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이런저런 사정을 아무리 얘기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모든 계획의 성패는 결과가 말해줄 뿐이다.

 그러니 계획을 잘 만들었다는 국제기구의 호평에 너무 좋아하거나 자랑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경제계획이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 뿌듯할지 모르지만 좋은 평가가 실적일 수는 없다. 고달픈 국민들은 계획보다는 실적을 원하기 때문이다. 경제혁신계획이 국제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실제로 경제를 혁신해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별로 많지 않다. 대통령을 만족시키기 위한 계획이 아니라 실제로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계획을 짜고, 잘 만든 계획이란 걸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