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다문 재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재계가 바짝 움츠러들었다. 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 보도로 제기된 삼성의 정치자금 제공 의혹과 두산 그룹 형제간 분쟁 등의 악재 등이 잇따라 터졌고 공정거래위원회가 33개 대기업 집단을 대상으로 위장 계열사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나서 기업들을 긴장하게 하고 있다.

대한상의는 25일 오후 갑자기 경제 5단체장 기자회견을 취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초 경제 5단체장들은 경제난 극복과 투자활성화를 위해 각종 규제 완화 등을 정부에 요구하는 한편 국민들의 경제회생 동참을 호소할 예정이었다. 경제 5단체는 올 하반기 경제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대 정부 건의문을 내기로 하고, 일주일 전부터 언론에 적극 홍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일련의 사태로 기업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런 건의가 설득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계는 이번 사건으로 지배구조개선.증권집단소송제. 금융계열사 의결권 제한 문제 등 주요 현안에서 재계의 목소리가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 이런 상황이 돼버려서 참 어렵고 난처하다"며 "빨리 정리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경제단체들의 위상 강화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전경련은 삼성 이건희 회장 등 대기업 오너들이 대외 활동에 소극적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두산 박용성 회장이 수장으로 있는 대한상공회의소도 대정부 정책 비판에 앞장섰던 박 회장의 활동이 위축되게 됐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대기업의 수도권 공장 규제 완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등을 줄기차게 외쳐 왔던 재계의 목소리는 당분간 잦아들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현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