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테이프 유출] "누군가 고의로 테이프 흘린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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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의 불법 도청팀 미림의 정체를 폭로한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미 필라델피아 거주.사진)씨는 불법 도청 테이프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배경에 대해 "누군가 고의적으로 테이프를 흘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정부에 망명을 신청 중인 김씨는 24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 정권 10년 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국민이 알게 되면 당시 정치 지도자(대통령)들에게 법적.도덕적으로 심판이 내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인터뷰 내용.

-MBC 이상호 기자에게 테이프를 팔았나.

"이 기자하고는 만난 적이 없다. 테이프가 언론에 공개되고 난 다음에 전화 통화를 몇 번 했다."

-누가 테이프를 유출했는지 아는가.

"MBC가 입수한 과정은 잘 모른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들은 바에 따르면 MBC 이상호 기자가 테이프를 미국이 아니라 국내에서 구한 것 같다고 한다."

-왜 중앙일보 홍석현 전 회장과 삼성에 대한 테이프만 흘러다니는가.

"많은 사람이 중앙일보와 삼성, 이회창의 과거 관계가 알려지면 다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누군가가 그 셋 중에서 하나를 겨냥하고 테이프를 흘렸을 것이다. 누군지 모르지만 난 고의로 흘렸다고 본다. 그 일이 왜 지금에야 터지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도청했나.

"공 팀장은 매일 작업을 나갔는데 한 1000개에서 2000개쯤이라고 본다. 많이 잡아봐야 2000개쯤일 것이다. 매일 한 군데 장소를 정해 나갔기 때문에 그걸 계산하면 대충 전체가 나온다. 혼자 독백하는 사람을 도청하진 않았을 것이고, 여러 사람이 노래하고 떠드는 걸 녹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밥집에서 사람들이 조용히 대화하는 걸 녹음하지 않았겠느냐. 그 사람들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을 테니까."

-누가 도청당했는지 알고 있나.

"나는 옆에서 지켜봤고, 가끔 가다 얘기를 듣고, 보고서도 보고, 그 정도다. 박관용 비서실장이 낙마하게 된 게 미림의 도청 내용 때문이고, 박상범 경호실장은 하도 오래 전이어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아마 미림이 아니라 다른 보고서 같은데, 아무튼 그렇게 해서 나갔다. 미림에서 이부영 전 의원에 대해 도청한 내용을 본 적도 있다."

-언론사 사주들에 대해서도 도청을 했나.

"언론사도 당연히 최고의 관심 대상이니 했다. 공 팀장이 다 녹음했으리라 짐작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내가 직접 아는 것은 없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신변의 위협을 조심하라고 하고 있다."

-유독 삼성과 중앙일보 전 회장 것만 나도는 이유가 일부러 흘린 때문이라고 보는 이유는.

"(희미하게 웃으며)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불법 도청에 대해 밝히게 된 배경이 뭔가.

"국민이 과연 우리나라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이해하고, 그 위에서 정치적 판단을 하길 원한다. 국민의 판단을 돕기 위해 공개한 것이다. 개인의 명예를 위해 한 게 아니다. 정보기관 출신이어서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불법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한다."

-국민이 대통령과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건가.

"YS와 DJ 정권 10년 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국민이 다 알면 국민을 속였던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법적.도덕적으로 정당한 심판이 내려질 것이다."

-불법 도청이 처음 시작됐던 YS 때부터 DJ와 노무현 현 대통령을 다 포함하는 건가.

"솔직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선 잘 모른다. 그 밑에서 일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YS와 DJ는 국민을 속여 온 정도가 아니라 민족에 죄를 지은 사람들이다. 범죄성으로 따지면 DJ가 더 나쁘다. 내 목숨이 붙어 있는 한…이런 얘기까진 하지 말자."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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