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 테이프 유출] 핵심 관계자 "사건 본질은 불법도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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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주한 스페인 대사 등 4개국 대사의 신임장을 제정받기 위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며 청와대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의 공개로 빚어진 파문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25일 정리 방향을 제시했다. 노 대통령은 우선 불법 도청 사건에 대한 국정원의 신속하고 철저한 자체 조사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안기부 불법 도청팀인 미림팀의 팀장이었던 공운영씨 등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가 급류를 탈 전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사 범위가 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정.재계 인사는 물론 언론사 최고위층들에 대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진 도청 테이프의 존재 여부와, 있으면 어디에 있는지 등을 확인할 방침이라고 한다. 물론 최근 공개된 테이프의 불법 유출 경위에 대해서도 조사한다.

국정원은 이미 미림팀장이었던 공씨에 대한 조사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만수 대변인은 "다른 도청 테이프가 더 있는지, 조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는 국정원 쪽의 판단도 들어봐야 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날 노 대통령은 '형평성의 문제'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불법 도청으로 취득한 일부 정보만 공개되면 공개되지 않은 동일 유형의 행위와 비교해 피해의 형평성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대변인은 이에 대해 "지금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최근 공개된 내용과 유사한 다른 행위들의 형평의 문제가 있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주목을 끄는 언급은 미림팀장 출신 공씨가 24일 SBS와의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그는 "정.재계 인사는 물론이고 중앙일보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 임원들도 도청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며 "중앙일보의 도덕성을 연일 공격하는 다른 언론사가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가"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는 "조선.동아일보는 자기들이 가장 정도(正道)를 걸어온 것처럼 하는데 정말 그걸 보고 역겨웠다"고까지 했다.

청와대의 고심은 국정원의 조사 결과 다른 도청 테이프들의 존재가 확인될 경우다.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다른 테이프도 공개해야 할지 여부다. 노 대통령은 이날 형평의 문제를 맞추는 대목과 관련, "이는 대단히 어려운 판단의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공론을 들어가면서 판단하고 결정할 일"이라고 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사회의 진지한 고민을 담은 공론화를 제안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비록 불법 도청이라고 해도 얻은 정보가 공개됨으로써 같은 행위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국민의 생각도 있다고 했다. 이는 더 이상의 정경 유착은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한편 청와대는 홍석현 주미대사의 거취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일단 객관적이고 책임 있는 진상 규명이 선행돼야 한다"(김만수 대변인)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 핵심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안기부 비밀 도청 조직에 의한 불법 행위"라며 "불법 도청 행위라는 전체의 큰 흐름을 봐야지 단순히 불법 도청의 결과물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당사자들도 억울할 뿐 아니라 잘못된 흐름"이라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도 이날 "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라고 강조했다.

최훈 기자 <choihoon@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cyjb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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