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여론조사, 문제 없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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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여론조사는 얼마나 정확할까. 또 얼마나 민심을 잘 대변하고 있을까. 불행히도 평소엔 알 길이 없다. 아무도 실제 사실(Fact)을 모르기 때문이다. 선거가 있어야만 예측과 사실 비교를 통해 여론조사의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조사 의뢰자나 일반 국민에겐 불행한 일이지만, '땅 짚고 헤엄치는' 여론조사 업계엔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그럼 선거 여론조사의 예측력은 어느 정도일까. 대통령과 광역자치단체장, 크고 작은 재.보궐 선거에선 제법 정확했다. 그러나 가장 큰 이벤트인 국회의원선거는 한 번도 맞힌 적이 없다. 때론 '족집게'였지만 때론 '헛다리'였던 셈이다.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자기 분수를 알고 자중해야 할 여론조사가 전혀 엉뚱한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휴가 함께 가고 싶은 연예인''다음 주 개봉 영화 중 화제작' 등 흥밋거리에 치중하고 있다. 재미로 하는 것이니까 아르바이트를 동원한 여론조작도 문제 삼기가 그렇다. 표본이 적다거나 오차 범위가 크다고 지적해 봐야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골치 아픈 조사방법보다 독자의 눈길이 우선이다. "요즘 남편들 셋 중 하나 아내에게 구박 당한다" "직장 남성 8% 성희롱당했다" "네티즌 3명 중 1명 외도 경험 있다". 말도 안 되는 조사 중엔 "교원 80% 교원평가제 형식화 우려" "서울시민 과반수 우울증 의심" "직장인 95% 스트레스 느낀다" 등이 있다.

조사 의도나 목적 달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도 문제다. 당연한데 뭐가 문제냐고? 여론조사의 과학성과 전문성을 찾아볼 수 없다. 말이 좋아 그렇지, 누구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아무나, 아무렇게나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그런 사례를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4.30 재.보선 이전에 청와대 의뢰로 실시된 '노무현 대통령 국정 지지도 50% 돌파'가 대표적이다. 돌파 여부도 의심스럽지만 선거에 대한 영향력을 염두에 둔 것이다. 국회에선 KBS 사장을 공박하기 위해 "국민 80% KBS 수신료 인상 반대"라는 조사결과가 급조됐고, KBS 노조에선 회사가 제시한 "경영혁신안 부정적"이란 지극히 당연한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가 '자가발전용'으로 내놓는 조사결과도 의심스럽긴 마찬가지다. 노동부의 "국민 78% 비정규직 법안 찬성", 여성부의 "국민 70% 성매매방지법 경제 영향 없거나 긍정적"은 조사 주제로 부적당하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의 "중앙행정기관 40% 온라인 여론조사 정책반영", 경기도의 "수도권 외국기업 유치 찬성 70%" 등은 여론조사의 탈을 쓴 홍보자료다.

여론조사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언론의 정밀보도(Precision Journalism) 때문이다. 호텔에서 혹은 술자리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여론을 취합하는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흥미 유발도 좋지만 부정확하고 감정적인 조사결과는 사기에 가깝다. 의도나 목적이 빤히 드러나는 조사결과는 허위보도에 불과하다. "어떤 이슈나 정책에 대해 영향을 미치겠다는 악의가 의심되기 때문"에 벌을 받은 '병풍' 김대업과 잘못된 여론조사는 무엇이 다른가.

신창운 여론조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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