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엑서더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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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팔레스타인해방기구 (PLO) 는 결국 서 베이루트를 떠나는 모양이다.
이스라엘군의 포위만 속에서 강요된 결정이다. 남은 길은 동쪽(시리아) 이냐, 서쪽 (이집트) 이냐의 결정뿐.
이들이 이집트로 가게 되면 그건 「엑서더스」의 길을 거슬러 가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의 학정에 시달리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해 이집트를 떠나 홍해를 건넜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이 찾아간 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다. 그곳이 바로 팔레스타인 땅이다. 지리적으로는 지중해의 동안,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과 시나이반도로 둘러싸인 좁고 긴 지역이다. 지금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는 땅이다.
구약성서에 보면 「아브라함」「이삭」「야곱」의 자손인 유목민 유대인은 3천5백년 전인 BC17세기에 처음 이 땅을 밟았다.
이곳에 최초의 유대왕국을 세운 것은 BC 1천20년「사울」.
그러나 유대왕국은 기원70년 로마제국에 정복되고 유대인은 세계 각지로 이산했다.
그후 정주한 이주민들이 이른바, 팔레스타인 인. 그러나 그들도 기원 7세기 아랍인에게 정복되고 11세기엔 기독교십자군에 짓밟혔다.
또 16세기엔 오스만 터키에 정복되고 이어 근세엔 영국, 그리스, 이스라엘로 주인이 바뀌었다.
이스라엘 창설의 시기인 1948년 외세 침탈에 시달리다 지친 4백만 명의 팔레스타인 인들은 고향을 쫓겨났다. 유랑민이 된 것이다.
그들은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에 뿔뿔이 흩어져 천막생활을 하며 독립의 꿈을 키웠다.
70년 미국작가 「제임즈·미치너」는 예루살렘 근처의 난민촌을 방문하고 『나는 그렇게 절망적인 곳은 일찍이 본 일이 없었다』고 술회한 적도 있다.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 팔레스타인 인의 꿈이 만들어낸 조직이 PLO다. 고향땅을 잃은 팔레스타인 민족을 대표하는 정치기구다.
64년 발족이래 꾸준히 세력을 확장해 지금은 다마스커스에 망명의회 격인 민족평의회를 갖고 2, 3만 명의 비정규군도 가졌다.
세계 1백8개소엔 대표부와 연락사무소를 두어 외교관을 상주시키고 년 10억 달러의 예산을 집행하는 행정기구도 갖췄다.
그 행정기구가 PLO집행위원회. 내각에 해당하는 15인 위원이 있으며 「야세르·아라파트」는 그 의장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의 꿈인 PLO는 지금 이스라엘 군에 쫓기고 있다. 국가 이익을 내세우는 아랍 형제 국들에게서도 괄시를 받고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지금 물론 그들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베이루트에서 쫓겨나는 PLO는 팔레스타인 인들에게서 그 땅의 「꿈」조차 뺏고 있다. 팔레스타인 민족의 얄궂은 수난엔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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