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서 … 퇴출 … 두산 '형제의 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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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이 형제간 경영권 분쟁에 휘말렸다. 대검은 21일 박용성 신임 두산그룹 회장 일가의 비리를 주장하는 진정서가 접수돼 진위 파악에 나섰다고 밝혔다. 대검 관계자는 "일방적 주장일 가능성도 크지만 2~3일 내 서울 중앙지검에 보내 내용을 확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 진정서에는 박 회장 등이 17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800억원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위장계열사를 통해 비자금을 만들고, 그룹 내 사업장에 생맥줏집을 차려 이권을 챙겨 왔으며, 자금 유용 등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두산그룹은 이날 '긴급 보도자료'를 내고 "박용오 회장에게 모럴 해저드를 적용해 그룹에서 퇴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룹 관계자는 "박용오 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사임하고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게 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검찰과 일부 언론사에 그룹을 비방하는 투서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용오 회장은 이날 밤 서울 도곡동 KBO 야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동생인)박용성.용만 형제가 그동안 수천억원에 달하는 비자금을 조성했고, 그런 일이 나에게 적발되자 공모하여 일방적으로 회장 교체 인사를 하는 등 도덕적으로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박 회장은 두산 경영진이 대거 비리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 회사가 어려워지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개인 비리에 대한 수사는 기업 경영과 관계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검찰에 투서한 것은 회사 직원이 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두산그룹 측은 이에 대해 "비자금 조성 사실이 없고, 터무니없는 주장에 대해선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룹 측은 또 임직원들에게 모럴 해저드가 발생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퇴출시킨다는 원칙을 적용해 박용오 회장에 대해 퇴출을 단행키로 가족회의에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박용곤 명예회장은 "가족과 그룹 전체에 대한 반역행위다. 박용오 회장은 이제부터는 가족과 그룹의 일원이 아니다. 완전히 제명한다"고 밝혔다고 두산그룹 홍보책임자인 김진 부사장이 전했다.

두산그룹에 따르면 박용오 회장은 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이 "취임한 지 10년 정도 됐으니 은퇴할 때가 됐다"고 하자 이에 반발해 두산산업개발의 계열 분리를 주장했다. 그러나 박용오 회장 측의 지분율이 0.7%에 불과하고, 계열 분리는 고 박두병 초대회장이 남긴 '공동소유.공공경영'의 원칙에 어긋나 가족회의에서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

이에 대해 박용오 회장은 "형제간의 의를 생각해 지금까지 참아왔으나 회사가 부실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량기업인 두산산업개발만이라도 독자경영 방식을 건의했을 뿐"이라며 "모든 사실을 관계당국이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밝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두산그룹은 창립 109년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됐다. 18일 두산이 박용성 두산중공업회장(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박용오 회장에 이어 새 회장으로 선임하자 재계는 두산의 모범적인 가족경영 전통을 높이 샀다. 그러나 회장 승계 발표 일주일도 안 돼 두산의 내홍이 표면화됐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단계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그룹 한 관계자는 "이. 취임 절차를 놓고 박용오 회장 측과 신임 박용성 회장 측이 불협화음을 보였으나 상황이 이처럼 커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양선희.염태정.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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