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역으로 무르익는 대만-중공 해빙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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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공과 대만간의 이념의 벽이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통일문제로 반목과 입씨름을 되풀이해오던 양측은 최근 홍콩을 통한 간접교역이 늘고 있는 가운데 대만 실업 인들이 대거 중공을 방문하는 등 경제면에서의 교류가 눈에 띄게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중공의 복건성 관리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금년 들어 약 7백 명의 대만실업인과 관광객이「비밀리」에 중공을 다녀간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비밀리」라고 하는 표현은 중공과 대만이 공식적으로 이 일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것일 뿐 양측이 묵인 내지는 묵시적으로 권장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그 동안 중공과 대만간의 경제교류는 공개된 비밀이다시피 활발히 이루어져 왔다.
79년1월 중공은 『대만동포에게 고하는 글』이라는 신년 메시지를 통해 대만과의 역내 무역을 호소하면서 통일제안 공세의 하나로 통항·통상·통우(대만과의 교통·무역·통신의 왕래)라는「3통 정책」을 내세워 대만과의 교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중공 측의 입장은 한마디로 『대만은 중공의 일부인 만큼 대만과의 거래는 「무역」이 아니라 국내물자의「교류」에 불과하다』고 해석, 대만제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매기지 않는 경우까지 있었다.
이에 따라 80년과 81년 전반에 거쳐 대만의 방적원료·TV수상기·공작기계·자전거· 팔 목 시계·만년필·라이터 등이 대량으로 중공에 쏟아져 들어갔다.
반면 중공에서는 한약재·화공제품 등 원자재가 대만으로 흘러나왔다.
물론 이러한 교역은 홍콩의 무역상들을 통한 간접거래로 메이드 인 홍콩의 레테르를 붙이는 형태였다.
대만으로서는 형식적으로 중공과의 무역을 일체 금한다고 하면서도 『어디까지나 홍콩에의 수출 일뿐 그 이상은 알 바 아니다』 라는 입장으로 묵인해왔다.
여기에는 대만경제에 도움이 되면 됐지 해로울 게 없다는 계산도 적지 않이 작용하고 있다.
실제 중공과 대만간의 교역은 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매년 늘어나 지난해에는 4억6천만달러(3전4백50억 원)에 이르렀다.
교역량이 늘어나자 최근에는 홍콩을 통하지 않은 채 대만으로부터 직접 광주의 황포 항에 전달되는 직접 교역까지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82년3월12자 홍콩의 경제 신문지『신보』가 홍콩주재 중공대의무역당국자의 말을 인용 보도).
한편 홍콩에서는 매일 5만 명 정도의 중 공 계 화교들이 구룡을 통해 중공을 드나들고 있는데 이들이 중공과 대만제품의 보따리장사를 하고 있음이 이미 여러 해전부터의 일이다.
중공은 등소평이 실권을 잡은 이래 중공에 근거를 가진 화교들에게 본토 방문의 길을 열어놓았으며 이것이 양측 교역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 중에는 대만계 사람들도 간혹 끼여있다는 것이 그 동안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있었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이번에 밝혀진 대만 실업 인들의 중공방문은 중공과 대만당국의 접근을 암시하는 계기라고도 볼 수 있다.
중공은 이미 심천·주해·산두·하문 등 네 곳에 설치하고있는 경제 특별구 가운데 대만과 가장 가까운 복건성 하문에 대 대만 공작기지를 두고 대 대만무역공사의 살림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중공은 이곳을 기지로 하여 대만 화교들의 투자를 장려하고 민간무역을 확대해 교류를 늘릴 구상이었다.
중공은 또 대 대만 무역공사의 설립과 함께 대만어민들의 해난사고에 대비한 피난항의시설, 장래 대만으로부터의 중공방문객을 위한 시설, 대만연구기관의 설치 등도 포함된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이번 실업인 방문은 하문 특별경제구역 계획위원회의 「주앙·웨이·핑」대변인 인이『우리는 대만 실업 인들을 특별 우대할 방침』이라고 말한 것처럼 중공의 구상을 실현에 옮기는 정지작업의 일환으로 평가 할 수도 있다.
대만 역시 이 방문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만의 현 지도층이 고령화됨에 따라 본토에 향수를 느끼고 있는 대만 인들의 압력은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념의 대립보다는 민족적 동질성을 우선하자는 흐름으로 맥을 이루고 있는 경향에 비추어 대만당국으로서는 이러한 요구에 어느 정도 신축성을 보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근 양측의 경제교류를 통일에의 새로운 전조로 보는 관측통들도 적지 않다.
다만 양측이 내세우고 있는 「조건」들이 어떤 형태로 양보 또는 타협되는가에 따라 그 시기는 결정 될 것이다 분명 중공과 대만간의 벽은 흔들리고 있다.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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