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음 사기 "회오리바람"후 판도 바뀌는 주가|건설 주 기울고 전자주가 기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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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장 여인 사건으로 제2의 증권 파동이라고 할만큼 한바탕 홍역을 치른 증권 시장은 한 고비를 넘기면서 전반적인 주가의 재편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뭐니뭐니해도 여전히 선도주의 자리를 고수해 오던 건설 주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요주의」주식으로 몰락해 버렸고 그 자리를 전자 주들이 메워 들면서 간신히 장세를 끌어가고 있다.
15일 현재 건설주의 주가지수는 71·5. 금년 초에 비해 무려 28·5%나 떨어진 것이다.
35개의 건설 주(1부 종목)중에서 액면가에도 못 미치는 종목이 18개로 절반이 넘는 형편. 금년 들어 최고 l천7백70원까지 올라갔던 대림산업이 9백88원으로까지 떨어진 것을 비롯해 동아 건설은 1천5백90 원에서 1천 원으로, 삼환기업은 1천450인 원에서 9백80 원으로, 극동 건설은 1천3백20 원에서 8백 원으로 각각 떨어졌다.

<액면가 이하 18종>
여기에다 장 여인 사건에 휘말렸던 L주택·S주택 주가는 3백∼4백원으로까지 폭락, 회사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건설주의 이 같은 몰락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공영토건 부도가 시발이었고 그 이후에도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다던 굵직굵직한 건설회사들의 부도 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여건을 봐도 중동경기의 퇴조에 따라 신규수주 뿐 아니라 기성 고에 대한 자금 결제가 제 때에 안 되고 있는 데다, 사분 시장의 마비로 급전 구하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에 따라서는 분위기에 휩싸여 도마 값으로 덩달아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다. 따라서 투자자 입장으로는 이런 회사를 골라낼 수만 있다면 오히려 조금만 장세가 호전되어도 큰 이익을 챙길 수도 있다. 그러나 상당한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어쨌든 건설 주에 대한 투자판단은 오는 7월이 고비일 것으로 시장관계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장 여인 사건 때 발행했던 어음의 상환기일이 7월초부터 집중적으로 몰려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자회사의 무담보 어음 발행잔고가 3월말 현재 2전30억 원 정도.
어음 결제기간이 보통 3개월 이상이니까 이들 어음이 6월말이나 7월초부터 본격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건설주의 주가가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사들이는 쪽도 있다. 이유인즉 아무리 부도 설이 나돌아도 해외건설업체인 이상,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으니 결국 구제금융으로 살리지 않겠느냐는 판단에서다.
한편 새로운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는 전자 주는 장 여인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 최근 꾸준한 오름세를 계속하고 있다.
시장주변에 나도는 루머를 종합해 보면 가전 3사의 금년 상반기 영업 실적이 예상보다 호전되어 이들의 흑자 합계액이 1백억 원에 달한다는 것이다.
사질여부는 더 두고봐야겠지만 어쨌든 이 같은 루머를 호재로 해서 최근 전자 주는 대부분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간판 격인 금성사와 삼성전자도 1천 원 선을 넘어섰고 가장 높은 주가를 유지하고 있는 이고 전자부품은 15일 1천6백81 원을 기록했다.
대체로 유명 전자주식의 경우 연초보다 20% 가량이 올라 있는 수준이다.
전반적인 침체 속에서도 유독 건설주가 이처럼 강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전자 주 자체의 호재보다도 그 것 말고는 다른 마땅한 투자 대상이 없다는 이유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건설주가 저 모양이 됐으니 그나마 쿠션을 기대할 수 있는 종목은 전자 주 쪽 뿐이라는 것이다.
안정 주로 손꼽히는 은행주 역시 장 여인 사건으로 상당한 파문이 일고 있다.
만년 선두자리를 고수해 오던 상업은행이 일신제강과 공영토건의 주거래 은행이었던 죄로 한일은행에 밀려나고 말았다.
15일 상은 주가는 1천15 원이었는데 반해 한일은행은 1천1백25 원으로 l백원 이상의 차이로 벌어져 있다.
한편 울산사건 이후 꼴 찌던 서울 신탁은행이 이젠 상업은행 다음에 이어 3위 자리를 굳히고 있고, 조흥 은행은 신승기업에 물려 주저앉기 시작한 제}에 이어 꼴찌로 떨어지고 말았다.

<식품도 12% 상승>
어떤 파동에도 끄떡없는 것은 역시 제약 주들이다. 유한양행·종근당·일양약품 등을 선두 그룹으로 해서 금년 초에 비해 평균 14·5%가 올라 있다. 단기차익을 노리지 않고 배당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면 주가 오른 것에 배당금까지 보장되니까 주식 시장이 혼미해도 상당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한가지 흠은 팔려고 내놓은 사람이 없어 거래가 활발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그밖에 식료품과 음료품 회사종목도 12∼13%의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금년 들어 가장 주가가 많이 오른 업종은 보험회사 주식으로 무려 39%나 올라 있지만 이들은 일반 투자자들이 사고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따로 생각해야 한다.
투자수익을 겨냥한 매매가 아니라 주로 기업차원에서 보험회사 주식보유 지분을 늘려 나가기 위해 자기네들끼리 사고 파는 것이다.
어쨌든 이처럼 보험주가 뛰어오르는 것은 경기의 호·불황에 관계없이 보험회사의 인기가 어떤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장 여인 사건에 대한 검찰수사가 사채시장 전주들에게까지 미치자 주식시장의 큰손들은 잔뜩 움츠러든 상태.
장 여인보다 더 큰손으로 알려져 있던 K모 씨는 최근 롯데 쇼핑센터에 차리고 있던 Y전기를 며칠 전에 문을 닫아 버렸고 그밖에 소문난 큰손들도 증권회사출입이 뚝 끊어졌다는 것.

<여전한「큰 손」장난>
그러나 최근 주가동향이 어느 때보다도 투기성이 강한 것을 보면 또 다른 보이지 않는 큰 손들의 장난은 여전한 것으로 시장 주변에서 보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 일부는 주가를 올려서 재미보는 것이 아니라 악성루머를 퍼뜨리고 주가를 떨어뜨려 재미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증권회사와 짜고 주가가 높을 때 공맹도 해 놓고 주가를 떨어뜨린 다음 사들여서 그 차익을 챙기는 수법이다.
4월말 이후 증권 시장은 루머의 홍수를 이루었다. 대부분이 악재였다. 4월30일 공영토건의 부도 설을 제1호로 해서 부도난다고 소문난 업체만도 10여 개에 달했다.
소문 난지 12일만에 정말 부도가 나자 그 동안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무시했던 소문들까지 다시 고개를 쳐들며 주가를 폭락사태로 몰고 갔다.
4월말 현재 2백80억 원이던 증권회사 예탁금 잔고가 공휴일을 이틀 건너뛰고 5월3일 시장이 열리자 하루만에 30억 원이 줄어들어 버렸다.
요즈음도 시장에 나도는 루머 중에 부도 설이 안 끼는 경우가 드물다.
오전에 부도 설이 나들다가 오후 들어서는 은행에서 구제금융이 나온다더라-,매일 이런 식의 연속이다. <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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