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부진 사모펀드, 원금보장 약정 허용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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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정부가 소버린자산운용 같은 외국계 사모펀드에 맞설 토종 사모펀드를 육성하기 위해 관련 제도를 정비했지만 국내 사모투자펀드(PEF)들의 행보는 답답하기만 하다. 자금이 잘 모이지 않는 가운데 실제 투자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금융감독원은 자금 모집과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PEF의 활성화를 위해 'PEF 투자 가이드라인'을 18일 마련했다. 이에 따르면 PEF가 2대 주주 등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하면서 최대주주 등 다른 투자자로부터 투자원금을 보장 받는 옵션계약을 맺을 수 있다. 그러나 투자대상 기업과의 원금보장 약정이나 확정 수익률을 제공받는 옵션계약은 맺을 수 없다. 금감원은 지난해 말 우리은행의 '우리1호 PEF'가 쎄븐마운틴그룹에 이어 2대주주로 ㈜우방에 투자하면서 확정 수익률을 보장받기로 하는 옵션 계약을 맺어 편법 대출 논란이 일자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 PEF 유명무실=지난 10일 현재 설립이 완료된 PEF는 7개 펀드 1조2000여억원 규모다.<표 참조> 또 변양호씨 등이 주도하는 '보고펀드'가 내년초 1조5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모집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설립 절차를 밟고 있다. 김병주 칼라일그룹 아시아 지역 회장도 자금은 모집 중이다.

하지만 이들 중 실제로 투자자금을 모은 곳은 단 두 곳 뿐이다. 미래에셋 계열의 맵스자산운용이 1400억원을 모아 투자 대상 기업을 물색하고 있고 우리은행은 모집 목표 2100억원 중 422억원을 모아 우방 투자에 사용했다. 나머지 펀드들은 투자 대상 기업을 고르면 돈을 내겠다는 약정서만 투자자들로부터 받아둔 상태다. 그나마 '우리1호 PEF'가 곧 청산됨에 따라 실제 투자를 집행한 곳은 하나도 남지 않게 됐다.

투자는 커녕 존립이 위태로워진 펀드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 2월 설립된 데본셔PEF는 SG위카스(옛 세계물산) 인수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설립 당시 돈을 내기로 약속했던 개인 투자자들이 출자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 투자부진, 서로 "네탓"=PEF를 설립했거나 추진 중인 금융회사들은 지나친 규제가 문제라고 비판한다. 정부가 이런 저런 규제 완화를 내걸었지만 실제 이뤄진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개인 20억원, 법인 50억원인 최소투자금액을 낮추고 설립 1년안에 경영권 관련 투자에 자본금의 60%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는 조항도 완화하겠다고 했지만 법 개정이 안돼 미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대상이 마땅치 않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자산관리공사와 산업은행 등이 옛 대우 계열사 등 굵직한 매물을 팔려고 하지 않아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같은 지적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업계가 스스로 활로를 찾기보다는 정부에 의존하려고만 한다고 맞서고 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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