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비즈] 사별한 남편 명함 보다가 아이디어 솟아 제품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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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제가 학교 선생님처럼 보입니까." ㈜한국인식기술 송은숙(42) 대표의 첫 인사말은 이랬다.

㈜한국인식기술은 종이에 쓰인 글자를 스캐닝해 곧바로 컴퓨터 등에서 문자로 편집할 수 있도록 하는 문자인식기술로 꽤 알려진 대전지역 기술벤처 회사다. 이런 회사 대표의 인사치고는 약간 생뚱했다. 18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3년 전 사업에 뛰어든 초보 사업가인 그가 가장 고민스러워하는 것이 '교사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문자인식기술 분야에서 이름을 날렸던 남편(이인동씨)이 2002년 9월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는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맡았다. 남편이 떠나자 코스닥 예비심사까지 통과했던 이 회사는 몇 달도 안 돼 부도를 냈다. 여기다 관할 세무서는 장외거래되던 회사 주식가치를 산정해 주식상속분에 대해 34억원의 상속세를 부과했다. 송 사장은 더 이상 물러설 곳도 기댈 곳도 없어 회사를 맡았다고 했다. TV드라마에나 나올 만한 일이었지만 드라마에선 늘 나오는 수호천사 같은 '남자 주인공'은 없었다.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교사를 하면 적어도 세 딸과 먹고 살 걱정은 없었지요. 그러나 남편이 죽기 직전까지 매달렸던 일을 빚더미와 함께 날려버리긴 싫었습니다." 그는 돈이 없어 현물(회사 주식)로 세금을 냈다. 그래서 현재 이 회사 2대 주주는 정부다. 그나마 평소 집에서 기술의 장.단점 등을 자세히 얘기해주던 남편 덕에 회사 업무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80억원을 웃돌던 매출액은 그가 회사를 맡은 해엔 9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남편의 명함집을 보다가 문득 명함 내용을 컴퓨터나 PDA에 그대로 옮기는 장치를 만들면 되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명함관리기 '하이네임'을 개발했다.

이 제품의 시장 반응이 괜찮았다. 그는 올해 45억원 정도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카메라폰으로 명함을 찍으면 명함에 적힌 정보가 곧바로 휴대폰에 입력되는 프로그램도 개발해 놓았기 때문에 우리 회사의 성장 가능성은 크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 선생님이 사업하면 망한다'는 고정 관념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바르게 사는 데 집착하는 교사의 기질을 바꿀 생각이 없다"며 "딸들에게 강한 엄마가 되기 위해 진실하게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남편이 먼 나라로 떠난 뒤 처음으로 '삶의 무서움'을 알게 됐지만, 딸들에게는 무서움 없이 세상사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다고 그는 덧붙였다.

글=양선희,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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