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으로 곪는 폴란드 계엄6개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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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는 13일은 폴란드에 계엄령이 선포된 지 6개월이 되는 날이다. 지난해 12월 기습적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한 「야루젤스키」정부는 1년 넘게 불꽃처럼 타올랐던 자유노조와 민주화 운동에 일단 찬물을 끼얹은 후 사실상 와해상태에 있었던 공산당 및 정부의 체제와 권위를 회복하고 결딴 난 경제를 복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그러나 폴란드위기는 지난 반년 동안 어느 면에서도 회복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겉보기의 안정, 무력통치에 의존한 외적평정은 내연하는 국민들의 저항운동과 계속 곪아만가는 경제상태를 가까스로 싸안고 있는 얄팍한 껍질에 불과하다.
처음 군사정부는 국민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믿었다. 두어 주일 동안의 소요 후 폴란드 국민들은 별다른 저항을 보이지 않아 마치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 안심한 군정 당국은 지난 5월초 통금해제, 구금자 1천여명 석방 등으로 국민들과의 「화해」를 시도했다.
그러나 군부의 승리는 환상에 불과했음이 곧 드러났다. 메이데이인 5월1일과 3일, 13일 등에 폴란드 국민들은 군정실시이래 최대의 반정부 시위에 나섰던 것이다. 심각한 유혈사태는 전해지지 않았으나 어느 도시에서는 호텔이 불살라지고 전차를 파괴하는가 하면 길거리에 바리케이드를 친 시위군중들이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다.
5월에 있은 국민들의 「춘계대공세」는 자유노조의 영향력이 아직 막강하며 와해됐던 조직도 서서히 재건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현재 폴란드에서는 공산당과 정부주도 세력밖에는 군사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군정 여섯 달 동안 정부가 처음 내걸었던 「국가질서와 신뢰회복」이란 약속도 오히려 역류현상을 보였을 따름이다.
이런 현상 중 두드러진 예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국민 생활수준이 전혀 향상되지 않았다. 생필품 공급을 풍부하게 한다는 구실로 가격을 2백∼5백% 인상했으나 상점에서 물건사기가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국민소득도 25% 줄어들고 공업생산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올해 안에 갚아야 할 외채만도 1백억 달러에 이르나 지금으로선 그걸 반밖에 갚을 능력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탈당·숙청 등으로 공산당의 기본조직도 약화돼 한 때 3백만을 웃돌던 당원수가 1백만 이하로 떨어졌다. 계엄령 이후 탈당한 당원수는 공식집계로도 15만이 넘는다.
▲공산국가에서는 이례적이고 「위험한」것으로 간주되는 군부집권체제이기 때문에 뒷전으로 밀려난 공산당과 정부, 군의 불안정한 삼각관계는 통치체제 안의 부조화와 불협화음을 낳고 있다.
군정당국자들을 더욱 암울하게 하는 것은 지하로 숨은 자유노조지도자들의 활동이 점점 조직화되며 저항의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군정당국은 막대한 보상금까지 내걸고 이들을 잡으려하지만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재 당국의 수배를 받는 저항운동지도자만 해도 1백여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웬만큼 큰 공장이나 직장에서는 빠짐없이 자유노조의 비밀세포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이를테면 브로치와프시의 한 건설장비 공장에서는 『현재 구성돼 있는 자유노조 14인 집행위원회는 파업의 경우 자동적으로 쟁의 위원회가 된다』는 내용의 유인물을 간행하고 있다.
이러한 지하세포조직은 전국적으로 현재 1천7백개 이상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예외 없이 지관지나 전단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으며 밤에는 공공건물의 담벼락(특히 경찰관서건물)에 반군정 구호를 페인트로 휘갈겨 놓곤 한다. 뿐만 아니라 구금자들의 동향을 알리고 군정을 비판하는 「불법적」인정기 간행물만 해도 3백종이 넘는다.
그밖에도 군정당국자들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는 것은 FM주파수를 이용한 지하방송이다. 서류가방에 넣을 수 있는 간단한 송신기를 이용하는 이 이동방송은 4월 중순부터 시작되고 있는데 주로 군중시위계획과 노조소식 등을 짤막하게 알려주는 무정기방송이다.
5월 이후 활발해진 학생·시민들의 저항이 이런 조직활동과 연관돼 있음을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번 시위사태는 자유노조지도층 중에서도 새로 대두한 젊은 강경파들이 주도했다는 분석도 있다.
지금 단계에서 저항운동이 어떤 국면으로 발전할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폴란드 정국의 중요한 변수중의 하나이며 국민들에 큰 영향력을 가진 폴란드 가톨릭교회는 최근의 시위사태가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정부·노조간 협상을 주선하려 들고 있는 데다 노조지도층 온건파는 교회와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본=김동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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