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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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텔리비전은 20세기 문명의 총아다. 이 시대의 대표적 정보, 오락미디어이기도 하다.
「레이건」미국 대통령은 바로 이 탤리비전을 국제정치의 마당에 끌어들이는 제안을 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국 의회 연설에서 소련의 「브레즈네프」당 서기장에게 한 제안이다.
탤리비전 방송을 통해 두 사람이 각각 상대방 국민들에게 연설할 기회를 갖자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간의 평화적 대결을 하자는 뜻이다.
핵무기를 포함한 무기경쟁, 더 나아가 체제간의 피의 대결이 아닌 「평화의 대결」이다.
「평화」는 더 말할 것 없이 인류의 소망이다. 그 인류의 소망을 매개하는 역할을 가장 사랑 받는 대중 매체 TV에 맡긴다는 구상이다.
미디어이론가 「맥루언」은 텔리비전을 「쿨·미디어」라고 한 적도 있다. 사람의 마음을 냉정하게 하는 미디어라는 뜻이다. 베트남전쟁 시절에 이 「차가운 미디어」를 바라본 미국 젊은이들은 총을 잡는 대신 반전운동에 나섰다. 하트(뜨거운)미디어인 라디오만 들었다면 베트남전의 결과도 달라졌을 것이라는 뜻이다.
텔리비전을 「정치적 미디어」로 보는 학자도 있다. 「정치」와 「텔리비전」이란 말을 합성한 풀리비전(polivision)이란 말도 나왔다. 미 보스턴대학의 매스컴 연구가 「버나드· 루빈」교수의 말이다.
l948년 「트루먼」이 「토머스·듀이」를 선거에서 물리칠 때만 해도 텔리비전의 역할은 인식되지 않고 있었다. 아직 수상기 보급이 신통챦았던 시절이다.
50년대 이후 사태는 일변했다. TV산업의 발전과 수상기 보급의 급증으로 텔리비전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확대됐다. 정치미디어로서의 면목은 60년 「캐네디」, 「닉슨」의 TV토론에서 결정적으로 입증됐다. 멋스럽고 활달한 「캐녜디」의 인상은 TV에서 유감없이 드러났다. 그 이후 텔리비전을 빼놓고는 미국 정치를 논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전 중 「카터」와의 TV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레이건」이 텔리비전의 위력을 모를 리 없다.
영화배우의 전력도 있고 하니까 화면에 나타날 자기 모습에 자신도 있을 것이다. 분장 기술과 제스처 면에서도 그는 풍부한 경험이 있다.
「브레즈네프」룰 상대로 한 상호 TV연설제의도 그런 자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을 것이다.
개방체제의 힘도 물론 계산되고 있다. 소련의 TV는 그 해제 강화를 위한 선동, 선전, 조직자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서도 TV는 사회적 불만을 강화하는 차디찬 미디어로 역작용하고 있다. 상호 연설의 기회를 가지면 그 역작용은 더 커질지도 모른다.
소련이 「레이건」제의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너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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