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언론정책 與의원 비판 빠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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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출범 이후 그런대로 순항하던 정부-야당 관계가 국정원 간부 인사에 부닥쳐 극한 대립으로 돌아섰다. 사태가 악화된 데는 객관적으로 보아 야당보다는 정부.여당의 책임이 훨씬 커 보인다.

우선 국회 정보위가 고영구(高泳耉).서동만(徐東晩)씨에 대해 각각 '부적절' '불가'의견을 낸 것은 법에 따른 인사청문회의 결론이었다. 이 의견이 대통령을 법적으로 기속하지는 않더라도 인사청문회를 둔 법의 취지상 존중받아야 할 무게를 지녔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이 의견은 여야 동수의 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나온 만큼 단순히 국회 의견일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속한 여당도 직접 관련된 것이다.

*** 대통령 자극적 발언 기사만 처리

이 정도의 합법적인 절차와 무게를 지닌 국회 의견이라면 존중해야 하고,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국회를 설득하고 고심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옳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정보위의 의견을 국정원장 임명에 간섭하는 '월권'으로 규정하고 "국정원이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할 때 행세하던 사람들이 색깔을 씌우고 있다"고 의원들을 비난하며 高.徐씨의 국정원장 및 기조실장 임명을 강행했다.

중앙일보는 4월 26일과 5월 1일자에서 이를 둘러싼 여러 문제점을 기사.해설.사설을 통해 비교적 충실하게 짚었다. 다만 대통령의 발언 중 가장 자극적이고 부적절했다는 평을 받은 '국정원 정권 시녀 때 행세하던 사람이 高원장에게 색깔 씌운다'는 대목을 타지는 1면 기사의 제목으로 부각한 데 비해 중앙일보는 제목은 없이 기사 만 써 톤을 낮추려한 듯한 느낌을 준다.

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한 논란은 공정거래위의 신문고시 개정안까지 겹쳐 지난 2주간에도 지속됐다. 신문고시 문제에 대해선 신문사 간에도 의견이 갈린다. 중앙일보는 신문시장에 대한 규제는 '선 자율-후 타율'이어야 한다는 한국신문협회의 입장에 충실한 보도와 논평을 하고 있다.

4월 26일자 신문을 보면 경쟁지들은 국회 운영위의 대통령비서실에 대한 정책질의에서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언론정책을 비판한 내용을 상세하게 다뤘다. 또 보수 진영이 주최한 언론정책 세미나에서 한국외국어대 정진석 교수가 주제 발표한 내용을 '방송.일부 신문 우군(友軍)포진 盧대통령 언론 영향력 커져'란 제목으로 상보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일보는 세미나를 아예 다루지 않았고, 운영위도 여당의원들의 누적된 소외감과 불만 토로에 초점을 맞추느라 정부의 언론정책에 대해 여당안에도 비판이 있음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정연주(鄭淵珠) 신임 KBS 사장의 경우를 보면 글쓰는 사람들의 엄중한 자기성찰과 무거운 책임감을 새삼 느끼게 된다.

鄭씨는 지난해 8월 9일자 한겨레신문의 '부자들의 잔치'란 칼럼에서 이회창.장상씨 문제를 거론하면서 "병역면제는 자녀의 미국 국적 취득 등과 함께 우리 사회 특수계급이 누려온 특권적 행태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터"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던 중 그가 KBS 사장 후보로 거론되면서 두 아들이 모두 1년반 전에 미국 국적을 취득한 사실이 밝혀졌다.

*** 鄭사장 글 따로 행동 따로 간과

그가 사장후보로 제청되자 4월 25일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박스 기사로 이 칼럼을 자세히 인용하면서 그의 글과 행동의 괴리와 이에 따른 도덕성 논란을 부각했다.

반면 그가 몸담았던 한겨레신문은 같은 날짜 3면 인터뷰를 통해 20여년간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들들의 시민권 취득이 병역을 기피하기 위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그의 해명을 보도했다.이와 관련된 논란은 이미 인터넷상에도 올라 있었다는데 유감스럽게도 중앙일보에는 보이지 않았다.

4월 21일자 중앙일보 1면 톱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현대에서 5억달러 외에 상선 미주본부를 통해 3억달러를 더 북한에 송금했다는 기사는 눈에 띄는 단독기사였다. 확인이 어려워 타지로 파급되지는 않았으나 대북송금 특검 수사결과가 주목된다.

부활절(올해는 4월 20일)은 1천2백만 기독교도들이 크게 기념하는 절기인데 중앙일보는 부활절 행사를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무신경하다고나 할까.

성병욱 중앙일보 고문.세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