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즐겨읽기] 사라진 아내가 남긴 흔적을 찾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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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오 자히르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문학동네, 447쪽, 9800원

깨닫기 위해 반드시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갈라지기 시작한 얼음판을 가로지를 용기만 있다면. 고작해야 얼음물에 빠지는 위험 뿐인데도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결혼 생활, 직장 경력, 세간의 평판이 '튼튼한 반석'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기 싫은 것이다. 켜켜이 쌓인 과거의 단층 속에서 화석처럼 살아가는 것. 주인공 '나'도 그랬다.

그런데 어느날 아내가 사라졌다. 종군기자였던 아내의 실종은 커다란 혼란을 가져온다. 미칠 것 같은 상실감 속에 나는 아내가 남겨둔 '표지'를 하나하나 찾아간다. 타인 혹은 어떤 사물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곧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란 것- 그리스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부터 되풀이된 주제다.

'연금술사'와 '11분' 등 전작들을 읽은 독자라면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짙게 밴 신작이 반갑기도, 당황스럽기도 할 것이다. 주인공 베스트셀러 작가에 현실의 코엘료를 겹쳐보이는 수법은 우화적 소재에 사실감을 주려는 장치로 보인다. 작품 제목이자 화두인 '자히르'는 어떤 대상에 대한 집념.탐닉, 미치도록 빠져드는 상태 등을 뜻하는 아랍어다.

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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