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하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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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때는 82변2월14일, 곳은 주남동 사파리클럽, 여기서 화제의 두 주인공은 호화로운 결혼식을 올렸다. 초대받은 저명인사 1백22명은 그때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이들의 진정한 결혼목적을….
나중에 안 일이지만 38살의 신부는 신랑이 「중앙정보부 차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전력을」, 59살의 신랑은 신부의 「능란한 사교술과 자금동원 능력을」 서로 이용하려 했다. 검찰 수사가 밝혀낸 이들의 결혼 목적이었다.
큰 사건이 일어나고 이들의 교제 범위가 문제되자 정작 당황한 것은 결혼식 하객이리라. 이들과의 단순한 교분 때문에 결혼식에 참석한 인사들은 자칫 사건에 연루되거나 이들의 「위세 놀음」에 놀아난 셈이 될테니까.
엎치락뒤치락한 경위야 어찌됐든 당국은 최후 순간에 이들의 명단 공개에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언론도 조심스런 태도로 보도했다.
적어도 이번 「하객 명단」만은 과거 어떤 탕아와 교제한 「명단녀」에게 쏠린 호기심과는 다른 차원에서 봐야한다. 선의의 피해자가 많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도대체 결혼식에 하객은 왜 필요할까. 그것은 『결혼을 증거해 주고, 축하하고, 의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라고 문화인류사는 가르치고 있다.
고래로 결혼에는 의식이 뒤따랐으며 의식 없는 결혼은 사회적으로 보장을 받지 못했다. 그러니 가족과 친척은 물론 친지나 우인의 입증을 반드시 필요로 했다.
그리스에선 친구들이 신랑을 샘터로 인도해 머리를 씻어준다. 이 사이에 여자들은 노래를 부른다. 정수 의식이라 부른다.
로마에서는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들어올 때 하객들이 횃불을 들고 피리를 불며 맞이한다. 성화 의식이라고 한다.
신랑·신부가 퇴장할 때 하객들이 쌀, 콩, 보리 등 곡식을 뿌려주는 풍속은 동·서양 어디서나 눈에 띈다. 곡물의 번식력이 강한 것처럼 다산과 부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하객의 독특한 역할 가운데 「신랑을 골탕먹이는」장난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한국의 동상비가 유명하다. 신랑의 발바닥을 때리는 심한 것도 있고 신랑이 가는 길에 재나 소금 뿌리기, 불놓기 등 면액 의식에 가까운 것도 있다. 엄숙한 의식을 웃음으로 눙치자는 뜻도 있다.
의식이 끝나면 하객은 피로연에 초대된다. 『예기』에도 『향당과 요우를 불러 주식을 베푼다』고 되어 있다. 고대에는 피로연이 결혼 의식의 전부였다. 지금도 발칸반도 내륙지방에선 사흘 동안 먹고 마시며 논다.
그러나 번잡한 결혼 의식도 이젠 옛말, 지금은 많이 간소화됐다. 절친한 사이가 아니면 하객으로 초대하는 것도, 참석하는 것도 사양하는 것이 생활 미덕으로 여겨진다. 바로 얼마 전엔 함값 5만원이 적다고 함을 잡히고 술을 마신 신랑 친구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사파리의 하객 명단에 불행히도 이·장 부부와 「막연한 사이」면서도 참석한 이름이 있다면 우선 이런 뜻에서 반성해 볼일이다. 「교분이 깊은」하객이 수사에 협조한다면 더욱 좋은 일은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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