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뜻의 원호의 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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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나라와 겨레의 운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신명을 바쳐 이를 보전하려고 애쓴 사람을 우리는 의인이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짧은 공화국의 역사 속에서나마 우리는 수많은 의인의 출현을 목격했으며 이들의 희생을 거리는 날이 현충일이고 그 회생에 보답하자는 결의를 굳히는 달이 6월 원호의 달이다.
올해도 온 국민이 정성을 모아 모범 국가유공자를 표창했고 각종 시상을 베풀어 그들의 유족을 위로했다.
또 구체적으론 원호대상자의 농장구입 등 자영사업을 위해 3천2백명을 선발, 직업보도교육을 시키고 무주택 대상자에겐 75억원을 들여 주택건립과 구입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게 원호대상자의 생활형편은 그런 대로 안정의 길을 찾았다. 원호처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원호대상자 13만 가구 가운데 72·8%가 생활안정권에 들었고 그럭저럭 생활이 유지되는 가구가 22·5%, 아직도 생활형편이 어려운 가구는 전체의 4·7%에 불과하다.
물론 의인들의 가없는 희생을 생각하면 오늘의 원호시책이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들의 뒷바라지에는 국민들의 알뜰한 정성이 담긴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이제 직접적인 원호대상자는 점차 고령화되고 있으며 유족들의 생계주체는 자녀로 바뀌고 있다. 당국도 원호대상자의 이 같은 구조변화에 따라 80년대의 원호시책은 그 성격을 달리해야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국가보상은 전체수준 인상에 중점을 두었던 것을 희생과 공훈도에 따른 「합리적 보상」으로, 자립생활의 기반구축에 머물렀던 자립시책은 성장을 위한 「내실추구」로 변모해야 된다는 결론이다.
따라서 의인들의 희생에 대한 물질적 보상은 한시름 놓게 됐으며 이제는 그들의 희생이 남긴 교훈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될 때다. 이것은 정부나 유족의 차원이 아닌 범국민적인 과제로 떠 맡겨질 문제다.
다 알다시피 그들이 신명을 바쳐 지키려 했던 것은 나라의 독립이며 통일이며 자유와 민주정신이다.
오늘날 어지러운 세태를 보면 언제 우리가 이런 의인의 존재를 가졌으며 과연 그들이 남긴 교훈의 10분지 1이라도 동행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해마다 현충일을 맞고 원호의 달 행사를 열지만 겉치레에 불과할 뿐 국민정신은 의인들의 낯을 보기에 부끄러울 지경으로 타락하고 있다.
의인들의 희생을 한낱 과거 얘기로만 돌릴 수는 없다. 그들이 신명을 바쳤던 그 상황을 생각하면 오늘을 사는 후손들은 옷깃을 여미며 반성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항상 6월을 추도와 애곡으로만 보낼 것이 아니라, 도대체 오늘을 사는 우리세대는 나라의 통일과 자유·민주정신을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할지를 생각해야할 것이다.
6월을 행사로만 보내지 말고 오늘을 사는 정신적 좌표를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것이 국민된 도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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