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아이폰 대란으로 ‘호갱’ 양산한 단통법 …‘백통법’ ‘음통법’ 청원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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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단통법에 뿔난 고객을 유인하는 휴대폰 매장 포스터.

우리나라 아이폰6 구입자에는 세 가지 부류가 있다. 10만원대에 아이폰을 구입한 사람, 뒤늦게 아이폰이 10만원대에 팔린다는 것을 알고 억울해하는 사람, 그리고 아이폰을 제 가격에 사고 자신이 어떤일을 당했는지 꿈에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다.

 ‘아이폰6 대란’이라는데 정작 보통 사람들은 이 ‘대란’이 어디서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지 못한다. 아는 사람만 안다. 마치 비밀첩보원처럼 ‘그들’만 바쁘다. 그 이유는 판매점 정보가 순식간에 알려지고 일정량이 판매되면 판매점은 바로 문을 닫기 때문이다. 초단타 주식거래(스캘퍼)처럼 치고 빠지는 휴대전화 가격, 아는 사람만 알아내고 일반인들은 뒤늦게 소문으로만 듣는다.

 2009년 KT가 금단의 ‘사과’(애플의 아이폰)를 깨문 뒤부터 시작된 스마트폰 시대의 전개 과정은 1997년 외환위기 시절의 PC방 붐과 비슷하다. 당시 PC방은 실직자들에게 생계형 창업의 기회를 제공했다. PC방을 위한 컴퓨터 조립, 인테리어, 신용카드 결제, 인터넷회선 판매, 게임 회사가 함께 살아났다.

 스마트폰 붐 역시 휴대전화 판매대리점과 케이스를 비롯한 액세서리, 게임앱, 모바일 결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음악서비스, 데이터통신 매출을 키웠다. 한 대에 100만원 가까운 스마트폰이 2~3년 가입 약정과 함께 팔렸다. 3000만 명이 샀으니 수십조원의 모바일 경제가 탄생했다. ‘뽐익인간(홍익인간에서 유래)’ “뽐뿌질(펌프질에서 유래)이 인간을 이롭게 하리라”는 용어가 생겼을 정도다. 뽐뿌질이란 지름신이 내린다는 말과 비슷한 뜻으로 ‘좋아하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하고 사고 마는 행위’를 자조적으로 일컫는 표현이다.

 그사이 인터넷은 모바일로 이동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세계적인 스마트폰 회사가 됐다. 음성통화와 데이터통신의 폐쇄적 시장에 안주했던 통신회사들은 스마트폰 요금제로 새로운 부가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다. 카카오톡·라인 같은 세계적인 국산 메신저들도 탄생했다. 그런데 정작 돈을 내고 모바일 시대를 만든 주역들은 고액 요금제에 몇 년씩 묶이는 ‘약정노예’가 됐다.

 최근의 단통법 파동은 또 다른 ‘호갱(호구 고객)’을 만들었다. 예약까지 해가며 80여만원의 정가에 아이폰6를 손에 넣은 이들은 이번 대란 탓에 다시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스폿(순식간에 싸게 파는 곳)’을 찾아 헤매는 ‘좌좀(좌표 좀 알려주세요의 약어)’들과 ‘폰테커(휴대전화를 사서 중고 시장에 팔아 시세차익을 남기는 사람)’들이 양산됐다. 통신회사는 악당이 됐다. 네티즌들은 악당 3사를 헬쥐(LG)·개티(KT)·슼(SK) 등으로 부른다. 인터넷에는 단통법으로 고객을 잃은 휴대전화 판매점들이 합법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짜고짜 고객의 뺨을 때리고 나서 합의금 조로 돈을 물어 주면, 휴대전화 판매와 별개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자학성 개그다. 고객과 휴대전화 판매점이 서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어야만 서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세상, 참 아이러니다.

 심지어 단통법 찬성 의원들 명단이 살생부처럼 나돌고, 스마트폰을 비싸게 산 국회의원들이 자신들만 비싸게 구매한 것이 억울해 단통법을 만들었다는 음모론까지 생겼다. ‘백화점에서 옷을 샀는데 다음날 세일해서 화난다. 백통법 만들어 달라’ ‘음료수 세 병 샀는데 편의점에 가보니 2+1 행사 하더라. 억울하니 음통법 만들어 달라’는 냉소 섞인 청원이 일기도 했다.

 명색이 스마트 시대다. 국회의원들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까지는 못할지라도 법을 만들 때는 스마트해졌으면 좋겠다.

임문영 seerli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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