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국회 방청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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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장 여인 국회』-.
정치부 기자들은 28일 개회 된 제 1백 13회 임시국회를 그렇게 불렀다. .
그러나 사회부 기자의 눈에는 「장 여인 국회」라는 개념이 선뜻 들어오지 않았다. 우선 분위기부터가 그러했다.
본회의는 하오2시부터 장장 7시간 여 동안 계속됐으나 정작 하이라이트가 돼야 할 장 여인 사건의 질의·답변은 고작 3시간 여. 개회식과 정부측 보고에만 4시간을 보냈다. 장 여인사건 질의가 시작될 무렵에는 모두들 진이 빠져 있었다.
질의가 시작된 하오6시께 총2백76석의 의원자리는 절반이상 비어있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따로 없어 요기를 하고 오겠거니 했으나 빈자리는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정치근 법무장관의 답변이 계속되던 하오 8시30분. 빈 의석을 세어봤다.
정확히 1백10석. 40%가 자리를 뜬것이다.
항상 그러는지는 몰라도 자리를 지키는 의원들도 연신 하품을 하거나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다만 기자석의 국회출입 기자들만이 헤드폰을 쓴 채 어휘 하나라도 놓칠세라 결사적으로 기록을 해 가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독자들의 무수한 격려와 질책을 받으면서 진실에 조금이라도 더 접근하기 위해 숱한 밤을 꼬박 새우며 이리 뛰고 저리 달리던 기자들의 자세와는 대조적인 국회상인 것 같았다.
진실규명을 위한 기자들의 사명이나 국민의 대변자로서의 의원들의 임무는 결국 입장이 같은 것이다.
매일 열리는 국회도 아닌데 질의와 답변도 맥이 없어 보였다.
『주범과 종범이 바뀐 이유는 무엇인가』『눈치 수사로 일관하지 않았는가』등의 따끔한 질의도 간혹 나왔으나 의원들의 질의는 대체로 수위(수위)미달인 느낌이었다. 답변 역시『×××의원의 질문은 아까 보고에서 자세히 말씀드렸다』는 대목이 자주 나와 질 낮은 질의라는 인상을 짙게 했다.
본회의가 산회 한 것은 하오9시7분.
『그럼 여기서 산회를 선포하겠습니다』…
『땅, 땅, 땅.』
정래혁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치기도 전에 의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러 일어나 의석을 떠났다.
복도에서 방청을 마치고 나온 윤대석씨(64·서울 신길5동 5통)를 만났다.
동네노인 17명과 함께 하오1시부터 줄곧 저녁도 굶은 채 방청석을 지켰다고 했다.
『궁금한 것을 좀 확실히 알았으면 해서 와 봤는데 실망만 느꼈어요.』
돌아오는 길에 택시운전사에게 말을 걸어봤다.
『이철희씨 사건을 아십니까?』
『예? 아! 장영자 사건 말이죠?』
『오늘 그것 때문에 국회가 열렸다는데….』
『그래요? 뭐 좀 나온 거 있답디까?』
방청하러 갔던 노인들이나 택시운전사의 마음속에 비친 국회의 상, 국회를 향한 기대의 수준을 읽으며 공연히 착찹해지는 심사를 억눌러야했다. <오홍근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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