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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위기 근원은 지성의 실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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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대학이 위기라는 말은 이제 엄살이 아니다. 특히 지방대학들은 어디 할 것 없이 아우성이다. 지난 6월에는 대학마다 구조개혁안을 만들어 내느라고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교육인적자원부가 6월 말까지 구조개혁안을 제출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통합이다, 구조조정이다, 정원감축이다 하며 앞으로도 대학가는 바람 잘 날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지켜보면서 마음 한구석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왜일까 추적해 들어가면 한곳에 가 닿는다. 바로 '지성(知性)의 실종'이다. 뜬금없이 웬 지성 타령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가슴 설레게 할 정도의 지성까지는 아니더라도 대학이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아야 되는데 사정은 그렇지가 않아서다.

최근 대구.경북권의 대학에서 벌어진 몇 가지만 봐도 그렇다. 우선 학생들이 구조조정을 반대한다며 벌이는 점거나 농성이 볼썽사납다. 총장이 학생들에 의해 감금되는가 하면, 한 국립대학에서는 교수회의장이 학생들에 의해 봉쇄되기도 했다. 그 맞은편도 별로 다르지 않다. 구조조정을 한다며 밀어붙이기 일쑤다. 재단이나 총장 자리가 무슨 힘쓰는 자리라도 되는지 안하무인이다.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는 대학이 별로 없을 정도다. 어느 조직보다 후진적이다.

구조조정이야 필연적으로 갈등을 동반한다고 치자. 대학 사회를 휘감고 있는 도덕 불감증과 양심의 마비, 집단 이기주의는 이미 그 도를 넘었다. 학자적 양심, 진리에 대한 감수성, 사회적 책무의식 등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 천박한 싸움터로 빠르게 전락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대구의 한 국립대학에서 교수가 시간강사에게 강의를 배정해 주는 대가로 성(性)상납까지 받았다고 한다. 대학원생 수당도 다시 돌려받았다고 보도되었다. 또 다른 대학에서는 최근 총장이 비리사건으로 구속되기까지 했다.

그만한 사건에도 이제는 별로 놀라지 않는다. 또 터졌구나 한다. 크고 작은 비리사건이 대학가에서 연이어 터지니 그럴 만도 하다. 캠퍼스는 어이없는 비리와 원시적인 갈등으로 날을 지샌다. 대학이 지역 사회의 골칫거리로 전락한 느낌이다.

한마디로 '지성의 실종'인 것이다. 지성이 실종된 대학은 더 이상 대학일 수 없다. 자정능력도 가질 수 없게 된다. 당연히 갖가지 문제가 안으로 곪을 수밖에 없다. 심하면 거대한 범죄 집단으로까지 전락할 수도 있다. 전문가 집단이란 이유로 공적 감시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들이 입만 열면 부르짖는 자율권 신장도 실은 탄탄한 자정능력의 기반 위에서 가능한 일인데 걱정이 태산 같다.

산학협력도 중요하고 경쟁력 강화도 시급하지만 지성의 회복이 먼저다. 그런데 교육인적자원부도, 대학총장도, 교수사회도, 학생도, 지역 사회도 대학 사회의 지성 회복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오로지 산학협력이요, 경쟁력 타령이다. 문제의 진단도 처방도 모두 비지성적이다. 그것이 걱정이다.

홍덕률 대구대학교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