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8백14억 삼킨 대전주는 누구인가|장영자 여인사건 수사…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어음사기사건은 과연 어디까지 파헤쳐질 것인가.
지난 20일 검찰은 사건의 종합발표를 통해「미진한 부분에 대한 보완적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으나 엿새가 지난 26일까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채 기소준비에 바쁜 실점.
시민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 이·장씨 부부가 동원한 사채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가는 계속 베일에 가린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사채업자는 중개인 노릇>
검찰이 발표한 이들 부부의 동원사채가 모두 1천8백3억원. 이씨부부는 이를 은행에 예금토록 알선해 신용을 얻는 대신 은행이자와 사채이자의 차액인 81억원을 지불한 것으로 나타나있다.
또 14개월간 이씨부부는 모두6천4백4억원의 어음을 사채업자들을 통해 할인하면서 7백33억원을 이자로 지급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사채이자 81억원과 어음할인이자 7백33억원 등 8백14억원을 삼킨 「돈줄」은 누구일까.
검찰은 이씨부부가 7백33억원의 어음할인은 사채업자들에게 지급했다고 밝혔으나 사채업자들은 중간 알선책으로 중개인 역할밖에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이씨 부부에게 1천7백억원의 사채를 동원해 주고 77억원의 수수료를 받은 것으로 발표된 사채업자 장동호씨는 검찰이 가택수색까지 했으나「빈털터리」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건전 사채 때문에 손못대>
수사가 진전이 안되는 것은 수배중인 사채업자5명이 잡히지 않아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고 구속된 사채업자들도 모두 전주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고 「자기돈」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검찰관계자는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들이 단기금융업법 위반혐의로 처벌을 받는다해도 형량이 가벼워 출소 후 「장사」를 계속하려면 신의를 지켜야하기 때문에 입을 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의 또 한가지 고민은 지하경제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들 전주들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는 것이 과연 경제적으로 국가에 도움이 되느냐는 것. 한 검찰관계자는 가뜩이나 불경기로 대부분의 기업들이 사채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은데 자칫하면 건전사채조차 움츠러들 우려가 있어「교각살우」가 염려된다고 했다. 또 「큰손」은 대부분 사회저명인사거나 그들의 부인들일 가능성이 높아 이들을 파헤칠 경우 이 사건의 수습단계에서 또 한차례 파동을 겪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 것.
이 때문에 검찰은 전주부분에 대한 수사를 놓고 여러 각도에서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사는 사실상 끝났다">
수사결과를 발표한 다음날 대폭 개각으로 정치근 검찰총장의 장관임명에 따라 새로 검찰의 1인자가 된 신임 김석휘 검찰총장이 이 사건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가 주목거리.
수사팀에서는 발표전의 긴장감은 엿볼 수 없고 21일부터는 줄기·뿌리 수사는 모두 끝났다는 듯 느긋한 표정들이어서 앞으로 가지나 잎부분의 수사에서 과연 국민들의 궁금증을 얼마나 풀어줄지가 의문이다.
대검의 한 간부는 수사는 사실상 끝났다고 밝히고 남은 부분은 잔숫자 정리를 하는 것뿐이라며 당장 급한 것은 28일부터 열릴「장여인 국회」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을 정도다.

<국회답변자료 총정리>
20일 종합발표와 함께 그 동안 수사에 차출됐던 서울지검 특수부와 남부지청 검사들은 대부분 원대복귀 했고 김상수·조준웅·이종찬 대검검찰연구관들도 연구관자리로 돌아갔다. 수사담당연구관인 심재륜 검사는 국회답변자료를 위해 총정리중.
소위「잔뿌리」수사자 가운데 이규광씨의 비호부분인 은행에 대한 압력여부는 대검중앙수사부 제4과장 신건 부장검사가, 황혁노씨(50)등 사채업자들은 성민경 제2과장과 정홍원·신건수 서울지검검사가 전담.
이밖에 서울지검 특수부 박주선 검사는 이·장 부부의 어음발행 및 대화산업의 거래실적, 구성원의 신분조사, 이씨의 사생활 등 보강수사를 펴고 있다.

<이규광씨 소환 땐 맞서>
이규광씨의 소환을 놓고 검찰수뇌부와 이광원 당시 법무부장관 사이에 한때 팽팽한 의견대립을 보였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검찰이 장여인으로부터 이규광씨에게 한·중동 합작은행 설립과 관련해서 1억원을 주었다는 결정적 자백을 받아낸 것은 15일 상오5시쯤.
이 사실은 즉시 정치근 검찰총장과 이종남 대검중앙수사부장에게 보고됐고 낮동안의 보강수사를 거쳐 15일 저녁 이장관실에서 이규광씨의 소환문제를 놓고 협의를 가졌다는 것.
이 자리에는 이장관과 정총장을 비롯, 서동란 대검차장검사·이종남 중앙수사부장이 함께 있었는데 이장관은 소환에 신중론을 폈고 검찰수뇌부는 즉시 소환과 구속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검찰팀이『배후 인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일단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으니 연행하는 게 당연하며 이것이 국민들의 의혹을 조금이라도 푸는 길이다』고 건의하자 이장관은 『당신이 지금 수사를 하느냐, 정치를 하느냐』고 했다는 것.
이 때문에 이부장은 2시간동안이나 장관실에서 나와 부속실에서 대기상태로 있었다는 것이 목격자들의 말이다.

<이틀 지나 구속방침 결정>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이씨의 1억원 수뢰사실도 청와대에 보고됐는데 이 자리에서 이장관은 『친척간에 오간 돈으로 뇌물로 보기는 어렵다』는 법률적 소견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규광씨에 대한 구속방침이 확정된 것은 이틀이나 지난 17일 하오7시쯤.
이는 검찰과 법무부 수뇌진들이 결정을 못하고 있는 사이 고위층의 판단으로 판가름 난 것으로 알려졌다. <권일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