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씨의 시 『가척의 노래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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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달의 시 중에는 황동규씨의 『가척의 노래놀이』(시집 『열하일기』 중), 박남철씨의 『아버지』(시집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 중), 강우식씨의 『파도조』(한국문학), 송수권씨의 『풍장』(한국문학) 등이 평론가들에 의해 주목을 받았다.
황동규씨의 『가척의 노래놀이』는 「공중헤엄」 「바다에 내리는 눈」 「가척행」 등 소제목이 달린 세 시가 연결된 한 작품이다.
제목 중 「가척」은 고려 때의 노래백정이다.
황씨는 이 제목에서 마지막에 「놀이」란 말을 넣음으로써 이 시의 화자를 자기비하에 빠지지 않는 예술가로 만들고 있다.
이 시는 좁게 보면 예술가의 소외, 넓게 보면 우리 전체의 소외를 다루면서 그러나 소외된 상태에 빠져서는 안되고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만들어 가야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자 이제 아랫도리를 보여 드릴까요 / 아랫도리는 웃도리보다 가볍습니다 / 자연스레 자맥질해 내려가는 모습으로 / 공중에 뜹니다」 첫 편인 「공중헤엄」에서 황씨는 현실에 바로 서있지 못하고 떠도는 상태를 그리고 있다.
다음의 「바다에 내리는 눈」에서는 왜 그렇게 되느냐가 이미지로 설명된다.
「큰 파도가 조그만 파도에게 말한다 / 머리를 좀 더 숙여라 / 네 뒷덜미가 아름답다」
큰 파도, 작은 파도가 이미지를 만든다. 마지막의 「가척행」은 「한강이 갑자기 어두워진다」로써 우리가 살고있는 둘레가 어두워진다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황씨는 그러한 어두움에 함몰되려 하지 않는다.
「눈발이 굵어지며 / 버스 창이 어두워진다 / 운전사가 라디오를 끄고 속력을 몰아쥔다 / 나는 조용히 옆사람에게 잔을 권하고 / 쥐포를 권하고 / 브레이크 잡아도 미끄러지는 / 버스를 권한다」
「브레이크 잡아도 미끄러지는 버스」는 공통의 위험이다. 황씨는 이러한 공통의 위험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서로 화합하여 닫힌 것을 뚫고 나가는 길을 모색하려 한다.
박남철씨의 『아버지』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직접대화로 조명하면서 젊은날의 방황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다.
강우식씨의 『파도조』는 금서가 풀리고 통금을 풀고 교복을 자유화하는 등의 일들이 서민들에게 어떻게 피부에 와 닿는가를 생각해 보게 한다.
강씨는 이같은 파도를 「막노동자의 쇠주한잔」 「통금을 풀고나니 모두가 다 갇힌 것이고 풀린 것이었다」로 표현하고 있다.
송수권씨의 『풍장』은 북에 두고 온 고향을 그리다가 숨져간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그려지며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한다. <도움말 주신 분="조남현·최동호·김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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