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여인 만만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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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집으로 배달된 여고동창회를 연다는 통지서에서 <중년여인>이라는 말을 처음 발견했을 때, 좀은 어색하고 쑥스럽고 그리고 당황했었다,
걸맞지 않은 옷을 입었을 때처럼 거북하기까지 했었는데, 걸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 같은 기분은 어디까지나 나만의 느낌이었지, 남들은 내게 그 옷이 썩 잘 어울린다고 말을 해줄, 나는 30대 후반에 선 중년여인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 중년의 나이가 되어 19년만에 가본 정동1번지, 나의 모교-뭉클한 것이 눈물이 솟을 것 같았다.
어머니 품을 떠나 긴 방황 끝에 다시 돌아온 방랑아-그같은 마음이 이럴 것인가.
학교는 약간만 변모되어 있을 뿐 백양나무도, 체육관도, 강당도…옛 그대로인데 나는 19년의 세월을 업고 많이 변화하여 그 앞에 선 것이다.
그래도 어제 하교해서 오늘, 다시 등교한 것처럼 다정한 기분이 드는 것은 그게 내 친정같은, 포근한 모교이기에 그러리라.
내가 공부하던 교실, 그 책상 앞에 앉으면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실 것만 같고, 복도 저쪽 끝에서는 친구가 이름을 부르며 뛰어올 것 같다.
실제로 『숙자야』하는 참으로 오래간만에 불려진 내 이름에 놀라 나는 잠에서 깨어나듯 퍼뜩 환상에서 벗어났다.
그래, 나를 『숙자』라고 불러줄 사람이 누가 있을 것인가. 우리들의 동창들 밖에는. 이름이 불려 졌을 때 <중년여인>이라는 말을 처음 발견했을 때처럼 좀 어색했지만, 그러나 우리는 곧 어울려 그동안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얘들아, 떠들면 이름 적는다. 조용히 좀 못하겠니?』 우리들의 회장이 그렇게 말했을 때, 까르르 여학생같은 웃음소리가 동창회실을 굴렀다. 『아이를 제일 많이 나은 아이(6명)』 『제일 어린아이를 가진 아이(2개월)』 『제일 뚱뚱해진 아이』 『선생님 별명을 많이 알고 있는 아이』 『시부모님 잘 모시는 아이』등이 선정되어 상품이 주어질 때마다 동창회실은 떠나갈 듯 했다.
동창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개나리나무 밑을 지나게 되었는데 물씬하게 코로 스며드는 풋풋한 냄새에 발을 멈췄다. 잎들의 냄새였다.
자잘하면서 예뻤던 꽃들이 전부 지고 난 후 풍성하게 잎들을 달고 있는 5월의 개나리. 그것은 마치 꽃같은 한 시기를 지낸 다음 맞이한 여인의 이른 중년같다.
예쁘지는 않지만 아름답고, 사치하지 않고, 세련되어 있는 것. 방황이 끝난 자리에 앉은 안정미 같은 것, 무엇보다도 두 아이를 데리고 길을 걷는 엄마가 풍기는 그 넉넉한 분위기는 무엇으로도 따를 수가 없는 것이다.
중년여인, 만세!

<서울 강서구 화곡동29의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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