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씨의 소설 「불의 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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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이 달의 소설 중에는 한승원씨의 『불의 문』(한국문학), 문순태씨의 『이어의 눈』(문학사상), 김원우씨의 『짐승의 말』(현대문학), 김지원씨의 『차나 한잔』(현대문학)등이 평론가들에 의해 주목받았다.
한승원씨의 『불의 문』은 획일화되어 가는 현대문명 속에서 인간의 본원적인 모습을 찾아보려는 노력이다. 한씨는 이러한 노력을 남성적인 힘에서 찾고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여성지의 편집장이다. 그는 잡지 편집회의에서 『밤마다 당신은 거듭 날 수 있습니다』등의 특집을 하는 것을 견뎌내지 못한다.
여성잡지가 판을 치는 것으로 비유되는 현대라는 사회는 인간의 깊은 사고를 불가능하게 한다.
한씨는 여기서 주인공이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그것은 우리 모두의 뿌리이기도하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아가는 과정을 마련하고 있다.
한씨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부모를 무당으로 그리고 있다. 어머니는 불에 홀려 떠도는 무당이고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징용이나 징병을 간 사람, 혹은 정신대에 끌려간 사람의 가족을 찾아가 무당굿을 해주고 또 신사에 불을 지르기도 한다. 한씨는 이 같은 샤머니즘의 세계에서 우리의 뿌리와 남성적인 힘을 찾아낸다.
문순태씨의 『이어의 눈』은 문씨가 추구하는 6·25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하는 문제를 다시 한번 다룬 것이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죽인 사람을 던져놓은 못에서 그 시체를 건져내기 위해 물을 뽑았더니 시체는 나오지 않고 큰 잉어가 나왔다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 잉어를 보고 사람들이 느끼는 화해의 감정을 말했다.
6·25를 다루는 소절에서 최근 이같이 화해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소설들은 이제 벽에 부딪친 느낌이다.
김원우씨의 『짐승의 말』은 「깨끗한 돈」등 4개의 이야기를 연결시키면서 세태비판을 하고 있다.
김지원의 『차나 한잔』은 집에 들어온 도둑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여자가 이 사실을 아파트 수위에게 알렸으나 오히려 나쁜 여자로 오해받는다는 내용으로 오늘날 우리의 이웃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말한다. <도움말 주신 분="김윤식·김치수·권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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