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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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오는 9월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EU 25개국 IT장관 회의'에 참가해 'IT 839전략'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다. 지난해 정통부가 내걸었던 이 전략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국제회의에까지 초청받게 된 것이다. 그런 그가 올해는 '따뜻한 디지털 세상'을 새로운 기치로 내걸었다. 따뜻한 디지털 세상은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인터넷 실명제를 포함해 네티켓(네티즌 에티켓) 운동, 사이버 명예시민 운동 등이 골자다. IT 강국으로서의 입지를 굳힌 만큼 이젠 급속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들도 치유하면서 제대로 된 IT 선진국으로 가자는 것이다. 새 전략 짜기에 여념이 없는 진 장관을 민병관 산업부장이 11일 서울 세종로 정통부 청사에서 만났다.

-최장수 장관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출범과 더불어 장관직을 맡았으니 2년 4개월 됐습니다. 한국 경제의 희망인 IT를 통해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앞당기는 게 제 소임이라 생각합니다. 좀 더 노력하라는 당부로 알겠습니다."

-이달 초 정통부가 천안 연수원에서 전략회의를 공개적으로 연 게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식사시간 빼고 10시간 동안 마라톤 회의를 했습니다. 기업은 물론 대학.시민단체 관계자도 많이 참석했고, 전 과정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해 3만여 명의 네티즌이 봤습니다. 정부가 인터넷 생중계로 전략회의를 연 것은 처음으로 생각됩니다. 감출 게 없다 싶어 자신있게 추진했습니다. 요즘 이슈가 되는 인터넷 실명제와 단말기 보조금 문제 등을 놓고 사전 각본 없이 아무나 묻고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로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회의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인터넷에 명예훼손성 가짜 기사까지 나도는 실정입니다. 그만큼 사이버 폭력이 심각한 것 같습니다.

"전 국민의 70% 이상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등 양적인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에 대한 배려 등 인터넷 예절 측면에서는 아직 개선의 여지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인터넷에서도 오프라인에서처럼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정통부는 올해 화두로 '따뜻한 디지털 세상'을 추진 중입니다. 인터넷 실명제의 경우 어떤 부분에 실명이 필요하고 어떤 부분은 익명이 허용돼야 하는지를 논의 중입니다."

-그동안 인터넷 실명제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네티즌들도 '개똥녀' 등의 사건 이후 찬성으로 바뀐 것 같습니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해친다'는 등의 반대도 여전합니다.

"실명제의 의미를 많은 사람이 오해하고 있습니다. 정통부가 연구 중인 실명제는 회원으로 가입할 때에만 실명과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하고, 평소 서비스를 이용할 때에는 필명(사용자번호나 별칭)을 쓰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명칭도 인터넷 실명제 대신 '본인확인우대제'로 바꾸려고 합니다. 실명제 취지는 명예훼손을 당하거나 인권침해를 받는 사람을 보호하고, 그 상대방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오프라인에서는 당연히 처벌대상이죠. 그러나 온라인은 아직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런 일을 했는지 파악하지 못해서죠. 따라서 문제가 크게 불거졌을 때에만 회원 정보를 체크해 해당 네티즌을 찾아낼 수 있도록 해도 사이버 폭력은 크게 줄어들 것입니다. 실제로 일부 사이트에서 이런 방식의 본인확인우대제를 적용하자 일반 네티즌들의 접속 건수가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콘텐트의 신뢰성이 높아지며 인기도 높아진 것이지요."

-시민단체나 일부 네티즌의 반대 논리도 일리가 있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실명제가 사전검열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따뜻한 디지털 세상을 만들려면 원칙은 필요합니다. 실명제가 정말 싫은 사람을 위해 익명성이 보장되는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오토바이 폭주족이 도심에서 달리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만,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 활동하면 문제가 안 되잖아요."

-지난해 정통부가 국가적으로 추진했던 'IT 839'전략이 빅 히트를 했습니다. 그런데 프로젝트가 너무 많아 헷갈린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IT 839 전략은 지난해까지 투자 등 준비를 했고 올해 시범 사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내년부터는 세상이 달라질 만큼 꽃을 피울 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휴대인터넷(와이브로) 상용서비스, 위성DMB 상용서비스, 수도권 및 광역시 디지털TV 방송 등이 대표적입니다. 그러니까 올해는 이런 사업들이 만개하기 직전인 '징검다리의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류 열풍을 디지털에 접목시키는 방안이 있나요.

"한류를 지속하려면 문화적인 가치에 상품을 결합해야 합니다. 드라마에 최첨단 휴대전화를 쓰고, 초고속 인터넷에 들어가 3차원 게임을 즐기는 장면을 넣습니다. 그러면 한국이 얼마나 IT강국인지 알려줄 수 있고, 해당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리겠죠."

-중국이 무섭게 따라오고 있습니다. IT분야는 더욱 심각하다고 봅니다.

"현재 중국과 우리나라는 IT의 산업 및 기술수준이 2~3년 차이로 좁혀졌습니다. 따라서 한국은 연구개발, 중국은 생산이라는 기존의 수직적 분업 관계로는 대중국 교역이 어려워질 것입니다. 한.중 양국의 '윈윈 체제'속에서 중국시장에 맞는 제품을 적기에 개발해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민간기업에서 일하실 때와 여러 가지가 달라졌을 것으로 봅니다.

"무엇보다도 평가기준이 기업은 성과를, 정부는 과정을 중요시하죠. 예를 들어 기업은 CEO가 60%의 확신을 가지면 나머지 40%는 본인 책임 아래 사업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정부는 99%의 확신을 가져도 1%의 반대를 끝까지 설득하고 포용해야 합니다. 또 기업은 의사결정 구조가 간단해 신속한 실행이 가능하지만 정부는 여러 부서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은 물론 다른 부처와 협의도 필요합니다. 정부에서 일하는 게 기업에 있을 때보다 몇 배 더 어렵습니다."

-철거민촌에서 살던 고교시절 방과 후 돌아온 집이 철거돼 오갈 데가 없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장관처럼 어려운 시기를 보내는 젊은이가 많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취업난을 겪고 있어 매우 안타까운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젊은 후배들에게 결코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갖고 이겨 나가기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어려운 경제도 시기와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반드시 회복될 것이고, 준비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어김없이 기회가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으면 합니다."

정리=이원호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llhll@joongang.co.kr>

진대제 장관은…
별명 '미스터 반도체'
노 대통령 신임도 두터워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디지털 전도사'로 통한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인정받는 데다 업무 추진력도 뛰어나 대통령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평가다. 부하 직원들에게도 철저히 일과 실력을 원한다. 그래서 원만한 성품에도 불구하고 '무서운 상사'라는 말도 듣는다.

1952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진 장관은 경기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74년)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와 스탠퍼드에서 각각 공학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의 휼렛패커드.IBM 등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삼성전자의 미국법인 수석연구원으로 스카우트됐다. 92년 메모리본부 제품개발센터장으로 국내에 들어온 이후 삼성전자에서 세계 최초로 64메가.128메가.1기가 메모리반도체(D램)를 잇따라 개발, 반도체 신화를 일궜다. 그때 그는 반도체 신드롬을 일으키며 '미스터 칩(반도체)''미스터 디지털'등의 별명을 얻었다. 당시 '천재경영론'을 펼치던 이건희 삼성 회장은 "삼성에는 아쉽게도 천재는 없지만 준천재는 3명이 있다"며 이윤우(현 기술총괄 부회장).황창규(반도체총괄 사장)씨와 함께 그를 꼽았다고 한다.

장정훈 기자 <cchoon@joongang.co.kr>

정통부의 과제들
사이버 폭력 등 걸러낼 장치 마련을

'인터넷의 미래를 보고 싶으면 지금의 한국을 보면 된다'는 말이 세계적으로 통용될 정도로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이다. 인터넷 인구 비율은 세계 2위,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최고다. 인터넷이 없는 우리 사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정보 습득은 물론 영화와 게임 등 놀거리, 교육 등 우리 생활의 상당 부분을 인터넷에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게 좋을 수만은 없듯 인터넷의 부작용도 함께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게 사이버 폭력이다.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은 여자를 사이버 공간에서 비난한 이른바 '개똥녀 사건'은 미국 주요 언론들이 보도하기도 했다. 대통령을 저격하는 패러디 포스터가 인터넷 언론 사이트에 오르고, 사이버 폭력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까지 나오자 정부도 그 심각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해찬 총리가 최근 인터넷 실명제의 도입 필요성을 언급한 것을 계기로 정보통신부가 현재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실명제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런 난제를 어떻게 풀지 진대제 장관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이희성 기자 <bud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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