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회담 재개 기여 안했다" 북한이 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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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본만은 6자회담 재개에 기여한 것이 없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10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의 일부다. 조총련의 한 관계자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한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방북과 베이징 비밀 협상 등 한국.미국.중국의 노력에 비하면 일본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도 굳이 회담 당사자를 꼬집어 비난한 배경은 여전히 궁금증을 낳고 있다.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코멘트는 없다. 하지만 납치 문제와 관련지어 해석하는 데 이견이 없다. 납치 문제를 6자회담에서 제기하려는 일본의 전략에 북한이 미리 제동을 걸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납치 문제에 대한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표현"이라며 "북한의 본심은 6자회담에서 일본을 배제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과거 세 차례의 6자회담 석상에서 납치 문제를 제기한 것은 물론 회담의 공식 의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지난주 G8 정상회담에서도 납치 문제 해결에 대한 협력을 호소했다.

북한으로선 유리할 게 없는 문제가 6자회담에서 논의되는 것을 환영할 리 만무하다. 따라서 회담장에 나오기 전에 납치 문제는 거론도 하지 말라며 쐐기를 박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나 중국.러시아를 향해 일본에 동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의 국민 여론은 6자회담에서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하지만 실제 회담이 그렇게 진행되긴 어렵다. 이즈미 교수는 "납치 문제를 국제적 연대로 해결하려면 별도의 회담 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일본의 고민이 있다.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은 11일 "6자회담 틀 안에서 북한과의 양국 협의로 납치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이 지난해 말 가짜 유골 사건으로 교착상태에 빠진 북.일 수교 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공세를 펼친 것이란 분석도 있다. 북한 뉴스 전문 통신사인 라디오 프레스의 스즈키 노리유키(鈴木典幸) 이사는 "북한은 6자회담에서 일본을 고립시킴으로써 대북 강경론 일색인 일본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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