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 주부들의 허탈감 무얼로 메워줄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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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사회=이번 이철희·장영자씨 부부 사채사건은 경제의 차원을 넘어 사회전반에 큰 충격과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분노와 허탈감의 단계를 지나 사회기반의 동요를 느끼게 하는 큰 사건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신문사에도 많은 전화가 걸려오는데 우선 강 선생께선 이 사건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강시인=무엇보다도 주부 입장에서 충격이 큽니다. 정부는 항상 조금만 기다리면 잘 산다면서「절약」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터지니 과연「절약」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정말 허탈감을 느꼈어요.
한두푼 저축하며 몇년씩 기다리는 주부들의 소박한 정신에 큰 상처를 안겨줬다고 봐요. 이 사건이 어떻게 수습돼도 지워지지 않을 이 상처가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또 분수를 뛰어넘으려는 한 여자의 과욕도 문제지만 종교적 구원을 깊은 신앙심에서가 아니라 돈으로 구하고 각광받으려는 일부 교계 풍토는 이 기회에 각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정 심리에 젖어>
▲김 목사=좋은 말씀입니다. 이번에 받은 일반인의 충격은 구설로 형용키 어렵습니다. 제가 만난 많은 사람들, 특히 여자분들은 일손이 안 잡히고 말도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이상한 부정적 심리속에 빠져있습니다. 이는 국가적으로 중대한 문제라고 봐요. 국민에게 준 이 엄청난 충격을 빨리, 그리고 철저하게 수습하지 않는 한 광범한 부정적 심리를 치유하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일반 국민이 신뢰하는 중요기관인 검찰은 빨리 모든 궁금증을 풀어줘야 합니다. 조금의 의혹도 없이 문제가 석연하게 밝혀지길 바랍니다.
▲사회=기업을 직접 이끌어나가시는 박 회장께선 어떻게 보십니까.
▲박 회장=이런 사건이 어떻게 이뤄질 수 있었을까요. 저는 이 사건을「낙석」으로 봅니다. 누가 돌을 던지든 맞은 기업은 당하게 되어있으니까요. 현재 기업의 재무구조는 너나할것 없이 빈사상태에 와 있습니다. 이토록 극도로 악화된데는 그동안 경제정책의 시행착오에 기인하는 면이 큽니다.
▲정 변호사=이 사건은 어느 특정 부부의 허영이나 일확천금의 음모가 낳은 사건의 차원으로 보질 않아요. 그동안 우리를 크게 놀래준 사건들이 많은데 이들은 그 뿌리를 같이하며, 또한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사건의 사기행각에 당한 사람들은 모두 사계의 권위자들입니다. 회사경영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 은행가들도 그 분야에서 두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당했다는데, 그것도 이들 부부가 손뻗쳐 닿는 대로 모두 녹아 떨어졌습니다.
거기엔 분명히「당할 여건」이 있었다고 봅니다. 권력층이 직접 관여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었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1천수백억원의 사채가 모여든데는 믿을 것이 있으니까 모여든 것이지, 무턱대고 모여든 건 아닐 거예요. 수사과정에서 이 부분이 밝혀지지 않고 있어요.
현대는 전문화된 기능사회 아닙니까. 기업가·금융가·교육가·법률가·언론인 모두 그 분야에 정통합니다. 국가 권력은 이들의 전문성을 보강하는데 그쳐야 합니다. 정치 권력에 의한 파행은 더 이상 없어야겠어요.
의식개혁은 실로 이 단계에서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정치하는 분들은 정신차려서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을 것이란 증거, 확고한 각오를 보여줘야겠습니다. 절망을 덮고 용기를 내도록 해야합니다.

<중요한 것은 교육>
▲김 목사=이번 사건에 나는 대통령이 특별검사를 임명해 내막을 속 시원히 밝혀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국민이 의혹을 풀고 심기일전해 정부를 믿게 되죠.
흔히 안보다, 외국에 대한 신용이다, 또는 경제파탄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그대로 넘기는 사례가 있었으나 이번만은 그러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사회=이번 사건은 사회안정의 바탕이 되는 기본적인 도덕률, 예컨대 법을 지키고 근검절약이나 분수에 맞게 사는 많은 국민들의 윤리기반을 흔들어 놓았다는 비난이 많습니다.
▲강시인=우선 여성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물질문명이 발달되자 많은 여성들이 남는 시간과 돈으로 자기 과시를 하려는 풍조에 슬픔을 느낍니다.
여성은 당연히 가정에서 봉사하는 것이 의무인데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남성들의 도덕 문제도 생각해볼 일이죠.
▲정 변호사=과거에 지도층·권력층에 있던 사람이 현재도 국내외에서 잘 사는 것이 본보기가 돼서는 안됩니다. 청빈한 노후를 보내는 도덕적인 목표가 정립돼야 합니다. 아무리 권세가 있더라도 그것으로 치부하고 행세할 수 있다는 풍조는 뿌리뽑아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들이 따를 것 아니겠습니까. 법 위에 있는 사람이 문제입니다.
▲박 회장=제5공화국 출범 후 대외 정책은 상당히 잘하고 있으며 고무적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국내문제에는 좀더 바른 인식이 필요할 듯 합니다. 정의사회와 의식개혁은 웃사람부터 수범을 보이고 조용히 그리고 질서있게 밀어나가야 합니다.
남산의 새보고 의식개혁 하자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정부의 권능을 국민이 믿도록 신용을 잃지 말아야 하는데 이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시인=제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새삼스럽게 벌어진 상황은 아니지만 일반 국민들에게는 어제오늘 아니게 여러 가지 특수성이 강조돼 왔어요. 옳은 얘깁니다. 안보는 우선돼야하고 올림픽도 강한 얘기고, 수출도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교육이라는 점을 이번 사건이 드러내 보여준게 아닐까요.
건전한 교육의 바탕이 없는 급속한 발전은 모래위의 성 같아서 뿌리없는 문명을 낳는다는 교훈을 심각하게 되새겨야 합니다.
▲정 변호사=가까운 이웃나라에선 몇대씩 가부의 직업을 이어가며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는 풍토가 자리 잡혀있습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개인의 보람과 전체의 이익이 일치되게끔 국력을 잘 다듬어 묶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가치의 다양화」가 이루어져있다는 얘긴데 정치란 바로 이런 것을 잘 해내야 하는 법입니다.
요즈음의 우리 사회는 권력과 돈 빼면 가치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식이예요.
국민학교 선생님으로 평생을 늙으면 일생을 권력의 수좌에 앉았던 사람에 진배없는 보람과 가치를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사회는 어떤 한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을만 하면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 말에 이를 억눌러온게 사실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둘러봐도 존경받을 사람이 없지요. 존경의 대상으로 남은게 있다면 돈과 권력밖에 없다고나 할까요.
여기서 다시 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는데 교육은 교육대로 선결돼야할 문제들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으니 걱정입니다. 이번 사건 못지 않게 교육적인 큰 사건도 많지 않았습니까. 가장 최근의 예로 학생들 공부 잘 시켰다해서 학교 책임자를 처벌한다니 이 무슨 도깨비 방망이같은 전인 교육입니까. 결국 모든 문제들이 그 뿌리를 같이 하는 것입니다.

<한심한 직업 윤리>
의식개혁 운동을 국민교육의 하나로 본다면 교통 질서를 잘 지키자, 줄을 잘 서서 차례를 어기지 말자, 부정심리를 추방하자는 식의 말초적인 것은 물론 국민각자가 명심해서 지켜야 할테지만, 이런 말초적인 것들이 자리잡게끔 정치적인 풍토를 마련해 주는 것이 위정자들이 해야할 일이고 바로 의식개혁의 첫 걸음이 돼야합니다.
▲박 회장=국민들도 이젠 웬만한 풍상을 다 겪었으니 알만한 건 다 압니다. 중요한건 사회적 권력층의 모법입니다.
▲사회=비록 권력과의 함수 관계상 부득이한 결과였다 하더라도 이번 사건과 관련, 기업인·은행가·관료들이 보여 준 한심한 직업 윤리를 반성해보는 것도 뜻이 있을것 같은데요.
▲박 회장=일제하의 외치, 해방 후의 관치, 도합 70여년 동안을 지내오면서 기업은 기업대로, 은행은 은행대로, 또 관은 관대로 직업 윤리같은 것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민간 주도 경제로의 전환을 부르짖고 있어도 과거의 관행이 그대로 되풀이되는 것이지요.
이런 때일수록 사회 각 분야에서 건전한 직업윤리의 확립이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사회=사건의 파문이 워낙 크고 넓게 번지고 있어 국민들의 관심이 지대합니다. 어쨌든 앞으로가 더 문제인데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는바가 궁극적으로 무엇이고 또 무엇을 교훈으로 삼아야할지로 결론을 삼지요.

<법 앞에 평등 보여야>
▲정 변호사=우선 당장은 장 여인 사건 내막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밝혀내야지요. 특히 장 여인이 초반에 돈올 불린 과정을 분명히 규명해내야 합니다. 또 견질 어음이 어떻고, 4시간만에 거액 대출이 척척 되어 가는 등 직업이 변호사라는 저로서도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잘 납득이 안가요.
근본적으로는 정치지도자들이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할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정치를 해야겠지요.
그러려면 정부가 내걸고 있는 의식개혁도 권력 가진 사람들로부터 해 내려와야 합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금까지 정면으로 거론하지 못 했던 것을 거론하고 손대지 못했던 것을 과감하게 수술할 수 있다면 진짜 의식개혁을 전개해 나갈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겠지요.
▲박 회장=기업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서라도 하루빨리 이 충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업체질이 지금같이 허약해서야 언제 또 다시 이같은 일을 어처구니없이 당할지 모릅니다.
▲김 목사=지난번 의령사건과 아울러 우리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어요. 극복해야지요.
▲강시인=한마디로 원칙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옳은 원칙이라도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꺾을 수밖에 없어요.
▲사회=결국 위로부터의 의식개혁, 힘 가진자의 차지, 법 앞에서의 평등, 원칙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겠습니다. 오랜시간 감사합니다.

<참석자>
강규순<여류시인>
박은태<미주산업 회장>
정광진<변호사>
김형태<서울 연동 교회 목사><무순>
사회:김영하<본사 경제부장직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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