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복귀하는 북한] 의미와 향후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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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제4차 6자회담을 개최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고 9일 조선중앙TV가 보도하고 있다.

▶ 우리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가 10일 6자회담과 관련해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

참으로 복잡한 우여곡절 끝에 북핵 해결의 마지막 기회가 열렸다. 이달 말에 재개될 4차 6자회담이 왜 마지막 기회인가. 어렵사리 재개된 6자회담이 최소한의 북핵 해결 실마리라도 찾지 못하고 끝난다고 가정해 보자. 그것은 북한 내부의 노선투쟁에서 핵무기 개발과 보유만이 북한이 살아 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군부 중심 강경파의 승리를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강력한 경제 제재를 통한 북한 고립화가 핵 개발을 차단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 네오콘(신보수파)의 입장이 부시 행정부 남은 임기 내내 대북정책의 기조가 될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발전하면 북.미관계는 물론이고 남북관계와 한.미관계가 초긴장 상태를 맞을 것이 분명하다.

4차 6자회담에 관한 한 관심의 초점이 과연 이번에는 진지한 논의를 거쳐 북핵 해결에 실질적인 진전을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맞춰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6자회담이 1년 하고도 한달 만에 재개되기에 이른 과정 또한 중요하다. 한마디로 지난 세 번의 6자회담과 달리 4차 회담은 남북한과 미국의 공동 노력의 산물이므로 중국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지난달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자극하지 말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미스터 김이라고 호칭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북한이 주권국가라는 말을 일부러 했다. 북한에 6자회담 복귀의 명분을 주려는 미국의 제스처에 대한 김정일 위원장의 반응은 화끈했다. 그가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한반도 비핵은 아버지 김일성의 유훈(遺訓)이라고 말하고 북한은 핵 회담에 복귀하겠다고 말한 것이 북한의 분위기를 최종적으로 바꿨다. 북한 외교부의 미주국장이 뉴욕으로 날아가 미국 관리들을 만났다. 홍석현 주미대사가 뉴욕으로 가 박길연 유엔 주재 대사를 만나 회담 복귀를 촉구한 것도 전례 없던 일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한 거의 독점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결과가 아니라 남북 대화와 한.미 공조 회복의 산물로 회담이 재개된 것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회담 재개가 곧 핵 문제 해결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핵 폐기에 관한 북.미 간의 거리는 아직도 멀다. 회담이 재개되면 일단은 미국이 지난해 6월 3차 회담에서 내놓은 제안으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은 북한이 3개월 동안에 모든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폐기하면 미국은 핵 프로그램이 폐기되는 과정에 맞춰 북한 체제의 안전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약속한다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미국안은 선(先) 핵 폐기의 요구다. 이것이 4차 회담에서 협상하고 보완할 부분이다.

정동영 장관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제의하고 워싱턴에 가 미국 측에 설명한 북한판 마셜 플랜은 핵 포기로 북한이 받을 보상을 크게 늘리는 것이다. 한국 내 여론 수렴과 미국의 양해라는 과정이 남아 있지만 경제사정이 최악에 이른 북한에 남한이 제안하는 마셜 플랜은 거부하기 어려운 인센티브일 것이다.

'길고 지루한(long and winding) 협상'이 예상된다. 변수도 너무 많다.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재개되는 6자회담이 3개월 안에 북핵 폐기와 북한체제 보장 및 북.미관계 정상화의 교환 원칙에 합의하고, 11월 부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최소한 김영남 인민대표회의 상임위원장이 옵서버 자격으로 참석하는 데까지 일이 진전된다면 북핵뿐 아니라 한반도 냉전 종식과 평화 정착에 큰 이정표가 될 것이다.

김영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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