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작가 10여명 전작 장편소설 집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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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청준·천승세·김승옥·한승원·윤흥길·김성동 등 소장작가 10여명이 전작장편 소설을 쓰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동화출판공사와 계약금 2백만∼3백만원, 집필기간 1년여의 조건으로 작풀 출판계약을 맺고 집필에 착수했는데 5월초 한승원씨의 작품이 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이들의 작품이 차례로 출판될 예정이다.
우리 나라에서 이처럼 많은 작가들이 한 출판사와의 계약으로 전작장편 소설을 쓰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문단에서는 이같은 출판사의 기획과 작가들의 집필을「본격장편 소설시대의 도래」로 받아들이는 한편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문단의 이같은 기대는 출판사와 작가사이에 맺어진 계약조건 때문-.
계약금 2백만∼3백만원은 지금까지 전작장편의 출판 계약금이 1백만원 선에 머물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계약금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집필기간이다.
1년 이상의 집필기간을 선정하고 출판 계약을 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전작 장편은 작가 쪽에서 상당부분을 써서 출판사를 찾아가 단 시일내의 출판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또 새로이 집필하더라도 짧은 기간 내에 완성시켜야했기 때문에 무리가 따랐다.
이같은 졸속은 출판사의 체질 때문이었다. 대부분 영세성에 기인하는 것이지만 출판사들은 계약금을 주고 나면 작가들을 몰아치다시피 하여 단시일안에 작품을 받아냈다. 이 때문에 작가들은 출판사 근처의 여관에서 한두달간 틀어박혀 작품을 써야하는 경우도 많았다.
출판사들이 계약금을 적게 주고 단 시일내에 작품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다. 지극히 현실적이라고까지 보이는 그들의 판단을 요약해본다면『많은 계약금을 주고 오랫동안 집필하게 한다고 해서 그 작품이 많이 팔린다고 확신할 수 없다. 또 빨리 만들어냈다고 해서 인기있는 작품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투자를 하는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려 속에는 훌륭한 작품을 얻어 출판해 보겠다는 의지의 결여와 함께 행운을 기대하는 요소가 있다.
또 한가지는 요즈음 소설이 잘 팔리지 않는데도 원인이 있다. 2백만∼3백만원의 계약금을 준다는 것은 책값을 평균 3천원으로 친다면 7천 내지 1만부가 팔려야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작가에게 주는 인세는 평균해서 책값의 10%정도다) 그런데 요즘 소설은 5천부 이상 팔리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래서 작품 집필과 판매는 악순환을 거듭한다. 급하게 써서 출판한 소실이 독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여 많이 팔리지 않고, 승산을 예측할 수 없는 출판사들은 또 적은 자금을 투자하여 작가들에게 그런그런 수준의 작품을 쓸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풍토는 작가에게나 출판사에나 결국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계약기간이 1년 이상 되고 충분하지는 않지만 작가가 여유를 가지고 쓸 수 있을 만큼 계약금이 주어지는 현상은 그렇기 때문에 우리 소설 작가 단에 하나의 전기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기획이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보아야하겠지만 작가들은 오랫동안 구상하고 차근하게 집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따라서 객관적 여건으로 보아 작품의 질이 높아질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내용있는 작품은 폭발적인 인기가 없더라도 꾸준히 독자층을 확보해 왔다는 사실도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소설가 한승원씨는『우리 문단이 지금까지 중·단편이 중심이 되어 오고 중량감이 느껴지는 장편이 부족했던 것은 작가 쪽에도 이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장편을 쓸 수 있는 여유를 주지 못했던 출판계에도 그 책임이 있다』면서 계약금과 집필기간이 늘어나는 추세를 다행한 일로 받아들었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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