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깊이읽기] 너 자신의 기억도 믿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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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로렌 슬레이터 지음, 조증열 옮김
에코의서재, 344쪽, 1만3500원

▶ 쥐가 지렛대를 누를 때마다 먹이를 주는 실험을 통해 보상이 행동을 강화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맑은 본 마음을 되찾으려 애썼던 옛 선비나 종교인들에게 마음의 이치, 즉 심리란 수양에 도움이 되는 한에서 의미가 있었다. 오늘날의 심리학자들은 마음의 본디 틀과 그 움직임을 들추어 마음의 여실한 모습을 보려 한다. 이 책은 심리학자들이 기울인 그런 노력, 즉 마음을 들추어보고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려 한 대표적인 심리 실험 10가지를 담고 있다.

1964년 뉴욕에서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집 앞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목격자가 38명이나 됐지만 누구도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심리학자 존 달리와 빕 라네티는 각기 다른 방에 피실험자들을 들여보내고 그 중 한 사람이 간질 발작으로 고통받는 상황에 빠진 것처럼 꾸몄다. 고통을 호소하는 간질 환자의 목소리를 들은 피실험자들 가운데 70%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과 간질 환자 단 둘만 있다고 믿었을 때는 피실험자들의 85%가 3분 안에 조치를 취했다.

집단 규모가 클수록 위험을 무릅쓰고 남을 도울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험 결과는 그 반대였다. 남을 돕지 않는 것은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구경꾼의 존재 때문이었던 것이다. 책임감 분산 효과라고 할 이 결과는 군국주의 세력에 너무도 순순히 따랐던 일본인들이나 나치즘의 광기에 홀려버렸던 독일인들의 심리를 설명하는데 유용한 듯하다.

워싱턴 대학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교수는 24명의 대학생 피실험자들을 모집하여, 피실험자 가족들에게 수집한 그들의 어린 시절에 관한 추억 세 가지와 쇼핑몰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는 가짜 기억 한 가지를 담은 소책자를 만들었다. 피실험자들은 소책자를 읽고 자신이 기억하는 내용을 자세히 적어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피실험자들 가운데 절반 정도가 기억을 조작해냈고, 특히 가짜 기억을 너무도 생생하게 묘사해냈다.

경험했다고 확신하는 많은 기억들이 스스로 조작해낸 가짜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 아주 작은 단서 하나를 가지고도 그럴 듯한 기억을 꾸며낸다는 것. 이는 자유 연상을 통해 기억의 재생이 가능하다는 프로이트에 대한 도전이다. 로프터스 교수의 말대로 우리의 기억은 '모래처럼 빠져나가기 쉽고, 쥐새끼처럼 간사하다.'

이 책을 통해 마음의 적나라한 모습과 마주하는 게 사뭇 불편한 독자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거울 앞에 설 때마다 자신의 외모에 흡족해마지 않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마음도 마찬가지일 터이니, 이 책은 내 마음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라 하겠다.

표정훈(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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