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이상화 정신 되새기자” 대구 시민단체들 손잡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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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립의숙’ 설립에 나선 3개 항일운동 관련 시민단체 대표들이 3일 대구시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 모여 시민학교인 민립의숙의 향후 운영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박동준 이상화기념사업회장, 신동학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상임대표, 이경규 대구가톨릭대 안중근연구소장. [프리랜서 공정식]

대구의 옛 항일운동 관련 시민단체 대표들이 시민학교를 만들어 교육에 나선다. 대한제국 때의 국채보상운동 등 우리 얼을 찾을 수 있는 강좌를 통해 이 시대에 필요한 나눔정신 등을 고취하려는 것이다. 강좌는 5일부터 다음달 24일까지 대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열린다. ‘안중근’ ‘이상화 문학기행’ ‘최제우, 동학’ 등으로 모두 8차례다. 내년 3월에는 봄 강좌가 이어진다. 대구시민이 아니라도 누구나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시민학교의 이름은 ‘민립의숙(民立義塾)’. 일제 강점기에 일어났던 ‘민립’ 대학 건립운동과 의연금으로 세운 학교라는 뜻의 ‘의숙’에서 따왔다. 시민단체가 자발적으로 세운 학교라는 의미다. 상징적인 학교여서 건물은 따로 없다. 강의실은 국채보상운동기념관 전시실에 마련됐다. 강사는 안중근 연구가인 대구가톨릭대 이경규(역사교육과) 교수 등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다. 재능기부 형태로 강단에 선다.

 민립의숙을 만든 단체는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상임대표 신동학), 이상화기념사업회(회장 박동준), 대구가톨릭대 안중근연구소(소장 이경규) 등 세 곳이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는 대구가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라는 점에서 만들어진 단체다. 대구에 있던 인쇄소인 ‘광문사’의 김광제 사장과 서상돈 부사장이 1907년 주창했다. 2000만 국민이 3개월간 담배를 끊어 모은 돈으로 일본에 진 빚 1300만원을 갚자는 운동이다. 고종 황제까지 동참하는 등 전국으로 확산한 경제 독립운동이다.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등을 통해 항일 정신을 고취했다. 안중근연구소는 안 의사의 맏딸인 안현생(1960년 작고)씨가 53년부터 3년간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에서 문학과 교수로 재직한 인연을 기반으로 설립됐다. 안 의사는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한 단체인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평양 소재)의 지부장을 맡기도 했다.

 이들 단체가 손을 잡은 것은 지난 4월이다. 세 단체 대표가 모인 자리에서 계층·지역 갈등 같은 사회적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해보자는 제안이 나왔다. 자신을 희생해 나라와 민족을 구하려 한 정신을 되살려 국민운동으로 확산시키자는 취지였다. 국채보상운동의 기부 정신이 나눔운동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의견도 많았다. 어려운 경제상황도 배경이 됐다. 경제난으로 국민들이 자신감을 잃고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안중근·이상화 등의 항일 정신을 되새겨보면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국 시민학교를 세우고 강좌를 여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이들이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시민학교의 명칭이었다. 각 단체가 5∼6개씩 이름을 내놓고 수 차례 투표를 거쳐 결정했다. 박동준(63) 회장은 “학교 이름을 의미 있게 지어야 많은 시민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며 “그래야 우리도 더 큰 책임감을 느끼고 학교를 잘 운영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딱딱한 강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구의 차’ ‘루소의 숲’ 등은 수강생에게 위안을 주면서 재미도 느낄 수 있게 하는 강좌다. 대구 달성군에 있는 루소의 숲을 거닐고 차도 마시며 자연을 즐기는 체험 프로그램이다. 신동학(82) 대표는 “국난을 극복한 역사를 돌아보면 자긍심과 함께 나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도 생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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