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모디아노 소설 『그토록 순수한 녀석들 』 한국판 26년 만에 재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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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파트리크 모디아노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랑스 작가 파트리크 모디아노(69)의 1982년작 『그토록 순수한 녀석들』(문학세계사)이 재출간됐다. ‘노벨상 특수’에 힘입어서다. 한국문학번역원장을 지낸 진형준 홍익대 불문과 교수의 번역으로 88년 『잃어버린 대학』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가 절판됐던 책이다. 모디아노의 소설은 대개 사설탐정인 주인공이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나서는 정체성 탐구에 관한 작품이 많다. 『그토록 순수한 녀석들』은 그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기숙학교 학창 시절 이름이 에드몽 클로드였던 소설의 화자 파트리크가 과거 동창생들에 대한 기억을 차례대로 떠올리며 그들의 근황을 소개하는 옴니버스 식이다.

파트리크의 기억과 현재 사이에는 대략 20년의 세월이 끼어 있다. 그 시간의 풍화작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변해버린 친구들과 그 주변 인물들의 모습이 과거 파릇파릇하던 시절과 대비돼 묘한 상실감을 자아낸다. 같은 반 친구 크리스티앙의 어머니 포르티에 부인과의 에피소드가 대표적인 경우다. 파트리크와 크리스티앙은 군가를 부르게 한 학교의 조치에 함께 염증을 느낀 게 계기가 돼 친밀함이 싹튼다. 우정이 깊어진 어느 순간 파트리크는 포르티에 부인의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20년 후 우연히 만난 포르티에 부인은 생활에 치여 삶에 환멸을 느끼는 중년 여성이 돼 있다.

 모디아노는 이런 얘기를 특별한 감정 이입 없이 사진 찍듯 덤덤히 묘사한다. 특유의 간결하지만 여백 많은 문체를 통해서다. 미국 아마존 산하의 서평 사이트 굿리즈(Goodreads)에 ‘모디아노 최고의 작품 중 하나’, ‘올드팝을 듣는 느낌’ 같은 서평이 올라와 있는 작품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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