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태 사진집 나와 … 소장품 특별전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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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황규태씨가 필름 태우기 기법으로 만든 1994년 작 ‘리프로덕션’.

황규태(67)씨는 터지기 직전의 뻥튀기 기계처럼 장난기가 늘 팽창해 있는 사진가다. 스스로 "사진 찍는 일을 즐거운 놀이처럼 해 왔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뒤늦게 발견한 컴퓨터와 스캐너와 포토숍을 무기 삼은 그는 미래의 우주 전사처럼 실체와 환영 사이를 오가며 우리 눈을 교란시킨다. "카피(copy)와 찍음(creativity)의 차이를 구분함이 무의미하다. 결과의 차원도 무의미하다. 인생의 결과도 그런 것 아닐까"라는 그에게는 복사기도 스캐너도 모두 카메라가 된다. 현실이 초현실이 되는 것 또한 같은 이치다.

열화당 사진문고로 나온 '황규태'는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그의 40년 사진세계를 밀도 있게 담은 '테크놀로지에 대해 말하기'책이다. 그는 '사진은 이래야 한다'고 근엄하게 말하는 대신 자신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재료 삼아 신나게 실험놀이를 해왔다. 사진집에 '과학적 심미성을 향해 열린 눈'이란 해설을 쓴 이미지비평가 이영준씨는 황씨를 이끄는 주요 모티브를 '과학이 제공하는 놀랍고 신비한 세계'라고 지적한다. 과학과 윤리 그리고 욕망의 문제를 감각과 재치로 풀어나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복제된 태아가 바코드를 붙이고 수퍼마켓에서 팔려나가는 상품처럼 진열된 '리프로덕션' 연작은 인류의 파국을 음울하게 예견하지만, 그 순간에도 황씨는 사진기법을 유희 삼고 있는 자로서 즐거워 보인다. 이영준씨는 "미래의 파국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감각적 향유의 극치에 의해 올 것인데 그때가 오기 전에 황규태는 이미지를 통해 미리 잃어버리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썼다.

사진집과 함께 10월 30일까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5전시실에서 소장품 특별전 '황규태, 1960년대를 보다'가 열리고 있다. "자연에 대해 오만과 폭력으로 들떠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 영장류는 막막한 우주에 버려진 한 점의 미미하고 무력하기 짝이 없는 태아 같은 것이 아닐까"라고 그는 맘껏 장난친 사진으로 말하고 있다. 02-2188-600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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