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부통령, 구회연설<요지>|"환영인파에서「아량」을 보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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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환영「부시」미국부통령 방한』-. 한미수교 1세기에 즈음해 「부시」미부통령을 맞는 25일 서울시내에는 휴일인데도 연도에 환영인파가 붐볐다. 「부시」부통령일행은 방한 첫날은 일요일이라 미군장병위문·만찬참석 등으로 비교적 조용하게 보냈으나 26일은 환영행사 참석, 대통령·국무총리예방, 국회연설, 답례만찬으로 바쁜 하루를 보냈다.
공항도착
부통령전용기인 공군2호기를 타고 25일 상오 10시7분 김포공항에 도착한 「부시」부통령내외는 마중나온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며 트랩을 내려와 기다리고 있던 유창순총리·노신영장관 등과 악수를 나누며 첫인사를 교환.
감색싱글차림의 「부시」부통령은 갈색투피스차림인 부인「바버러」여사와 함께 공항귀빈실에서 미리 준비한 도착성명을 낭독하고, 부시부통령은 동작동국립묘지를 거쳐 정동미대사관에 여장을 풀고 「워커」대사관 현황을 청취.
「부시」일행이 지난 김포∼동작동∼정동에 이르는 연도에는 휴일인데도 수많은 인판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와 환영했으며 「부시」부통령내외는 차창밖으로 손을 흔들어 환영에 답했다.
전방시찰
25일 하오 한미연합야전사령부와 전방부대를 둘러본 「부시」부통령은 점퍼차림으로 최전방 관측소까지 시찰.
부대장으로부터 포대경을 통해 적진지를 살펴보라는 권유에 『내가 북측진지를 관찰하면 저쪽에서 기분나빠하지 않겠느냐』고 조크한 뒤 약5분간 북한진지 등을 관측.
「부시」부통령은 특히 대형확성기를 통한 북괴의 대남장송에 대해 그 내용·방송시간 등을 자세히 물어보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
환영만찬
「부시」부통령일행은 25일 저녁 호텔신라다이내스티홀에서 유총리가 주최한 리셉션과 만찬에 참석한 뒤 국립국악원의 민속공연를 관람.
「부시」부통령은 칵테일을 들며 한국날씨와 이날 자신이 가졌던 전방시찰에 관해 얘기를 나눴고 「바버리」여사는 국내인사부인들의 한복을 보고 『멋있다』고 찬사.
「부시」부통령은 답사에서 『한국인의 손님대접에 관한 많은 얘기를 들었는데 연도의 환영인파를 보고야 어째서 이 나라가 그처럼 아량과 정중함으로써 이름나 있는지 알았다』고 후의에 감사.
청와대예방
26일 상오11시10분 청와대에 도착한 「부시」부통령은 이범석비서실장의 안내로 방명록에 서명한 뒤 소접견실에서 전두환대통령과 재회인사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한 뒤 서재로 옮겨 단독요담에 들어갔다.
45분간의 단독요담을 마친 뒤 전대통령과 「부시」부통령은 소접견실로 나와 양측수행원들과 악수로 인사를 나누고 환담했다.
전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미수교1백주년을 맞아 앞으로 1백주년의 우호를 다지기 위해 방한한 「부시」부통령내외에게 한국민을 대표하여 감사한다』고 인사.
전대통령이 『한국에 처음오신 분이 계시느냐』고 미측수행원들에게 묻자 『「다이크」부통령안보담당보좌관이 처음』이라는 대답에 『내일 떠나지 말고 며칠 더 묵으며 안보상황 등 여러 가지를 더 보고 가는 것이 어떠냐』고 농을 건넸다.
본인은 이번에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했습니다만 이번 방문이 본인의 마지막 방문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본인은 한국에 도착하자 두가지 일에 놀랐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휴전선 비무장지대(DMZ)에 얼마나 가까운 곳에 와 있는가 하는 것과 그 근접성이 서울에서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실감하게 된 사실입니다. 둘째는 본인이 한국국민들의 따뜻한 환영에 놀라고 감동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금년에 한미양국의 정부와 국민들간의 수호1백주년을 경축합니다.
1백년이란 인류역사의 흐름에서 본다면 그다지 긴세월이 아닙니다. 그러나 1백년이란 세월은 독립한 이후의 미국의 역사의 반에 해당합니다.
본인은 미국국민들과 레이건대통령의 인사말과 우정을 가지고 왔습니다. 본인이 오늘 이 자리에서 하는 말은 그분들을 대신해서 하는 말입니다.
본 국회와 같은 입법부야말로 국민들의 관심사가 다루어져야 하는 곳입니다. 본인 자신도 입법부란 항상 조용하기만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가끔 입법부는 오히려 소란스럽습니다.
우리 미국 의회는 가끔 매우 소란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달리 바꿀 생각은 없습니다.
수교1백주년은 우리 양국의 우호관계의 지속성을 강조하기에 적절한 시기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충실한 맹방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맹방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비공산세계(권)의 동반자입니다. 바로 이 사실이 우리의 유대를 성스러운 것이 되게합니다.
미국은 태평양국가이며, 한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맹방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비공산세계를 지배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며, 오직 비공산세계에서 긴요한 동반자가 되고, 우방이 신뢰할 수 있는 벗이 되기를 원할 따름입니다.
미국은 경제적 기적을 일으킨 한국과 같은 나라를 우방겸 맹방으로 갖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1970년과 1980년 사이에 우리 두나라의 무역량은 5억3천1백만 달러로부터 1백억달러로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한국은 미국의 아홉번째로 큰 무역상대국이며 앞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더 그 중요성이 높아질 것으로 우리는 예상합니다. 귀국민의 근면과 굳은 결심으로 이룩된 이와같은 경제적 성공으로 말미암아 귀국의 지유수호노력을 돕기로한 미국의 결정은 세계사회에서 보람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뛰어난 경제적 성과를 놓고 볼 때 다원주의의 가능성은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하에서는 입법기관이 국민의 의사를 결정하는 유일하고도 진정한 수단입니다. 물론 국민의 의견은 각양각색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지적했다시피 자유국가에서는 사람마다 자기 의견을 표명한 권리가 있으며 또 누구나 타인의 의견을 듣지않아도 되는 권리가 있습니다.
어떤 나라들에서는 다원주의를 두려워하고 있으며, 사전에 정해진 소수만이 다수의 우명을 좌우합니다.
미국은 맹방이나 적대국이나를 막론한 모든 나라에서 민주적 관습이 억압당하는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치적 다양성을 약점으로 보지않고 힘의 원천으로 봅니다.
한미간의 매우 긴밀한 협력관계는 이미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미국은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립한 관계와 같은, 새로운 대외관계를 수립하고자 시도하게 될 것입니다마는, 오랫동안 지속된 우리의 다른 우호관계들을 희생시키면서 그리하지는 않을 것 입니다. 억지의 요체는 균형이 있는 곳에 안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정책은 1954년 이래 한국의 평화를 유지해 왔습니다.
영속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노력에는 단지 현상을 유지하는 것에 이상의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분단된 한반도의 올바를 통일을 지향하는 전대통령의 대담하고도 창의적인 이니셔티브를 그토록 강력히 지지하는 이유입니다.
본인은 이 기회에 김일성에게 똑같은 정신에서 전대통령의 제의에 호응하라고 추구하는 바입니다.
미국은 한국과 함께 북한과 더불어 새로운 구상을 기꺼이 토의할 것입니다. 우리는 단독으로 북한과 토의할 의향은 없습니다.
「레이건」대통령은 대화를 이룩하는 최선의 방도는 이를 힘의 립장에서 추구하는데에 있다고 믿고 있지만 대화를 위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려 애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국이 전세계에서 미군을 철수시킨다면 소련이 국제적 행동면에서 자제할 아무런 유인도 갖지않게 될것입니다. 때문에 소련과 기타 공산국가들이 국제법을 존중하고 국제적 긴장을 완화시키기로 마음먹는 날이 올때까지는 미국으로서는 계속 강력한 힘을 유지하는 이외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계속 강력하게 남아있을 것입니다.
김일성은 미국의 평화유지군을 한국에서 철수시키는 문제를 완강하게 고집하고 있습니다. 본인은 이 기회에 그에게 쓸데없는 말로 정력을 낭비말도록 타이르고자 합니다.
미국은 김일성이 또다른 침략을 감행하여 시계바늘을 32년전으로 되돌려 놓을 수 있게끔 한국에서 물러설 의향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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