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가 그린 엄마 얼굴에 마마자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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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학교에 갔다온 국민학교 2학년짜리 딸애가 미술공부를 한 도화지를 내어놓았다. 도화지를 받아보니 어설프게 그려진 여자의 얼굴이 있고 양볼에는 까만 점들이 몇 개씩 찍혀있다.
『이게, 누구의 그림이냐?』
『보면 몰라? 엄마의 얼굴이지.』
볼이 부은 딸애의 말을 듣고 나는 그만 아연해졌다.
엄마의 얼굴!
나는 어릴 때 마마를 심하게 앓아 그 후유증으로 얼굴에 곰보자국이 양볼에 몇 개씩 남아있다. 아마 선생님께서는 오늘 미술시간에 엄마의 얼굴을 그리라고 한 모양이다. 일상생활 속에 가족들의 얼굴모습을 유심히 살핀 딸애가 솔직한 표현으로 나의 얼굴 모습을 그린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나 어쩐지 씁쓸한 마음 금할 수 없다.
만일 언청이나 애꾸눈 엄마를 가진 아들이 있었다면 그대로 그렸을까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물론 그런 아이들도 솔직한 표현을 하자면 그대로 그렸겠지.
요즘은 의술의 발달로 미리 예방도 할 수 있고 또 치료도 할 수 있지만 해방 전후에 태어난 그때의 아이들은 어디 요즘같이 예방치료는 꿈도 못 꿀 때 였을 것이다. 심하면 목숨까지 잃기 일쑤였으니까.
엄마의 얼굴을 곧이곧대로 그리고 그런 엄마를 불만스럽게 쳐다보는 아이를 어떻게 다루었으면 좋을까 생각해 본다.
퉁명스럽게 양볼에 찍혀진 몇 개의 까만 점을 보고 있으려니까 지나간 TV연속극 달동네의 똑순이 엄마 생각이 나서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엄마는 얼굴에 까만 점들이 몇 개씩 있어도 또순이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똑똑하지 않더냐.』
아직까지 내 앞에 볼이 부어 앉아 있는 딸애의 얼굴을 보니 매우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아마 다른 애들의 엄마얼굴은 매끈하고 예쁜데 그렇지 못한 우리 엄마에 대한 불만인 모양이다.
나는 딸애의 기분전환과 이해를 시키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얼굴의 곰보자국 보다 더 몹쓸 병에 시달리며 고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체의 어느 부분이 못쓰는 불구자라도 훌륭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동안 약 한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린아이들이란 본대로 들은 대로 솔직이 표현하는데 천진난만한 동심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란 귀엽고 사랑스러운 것이 아닌가. <경남 진주시 옥봉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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