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자사고 폐지, 무리하게 밀어붙일 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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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31일 6개 자율형사립고를 지정 취소했다. 배재·중앙·세화·이대부고·경희·우신고 등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서울시교육청의 평가가 위법하고 교육부 장관과 협의도 거치지 않았다”며 시정명령을 내릴 방침이다. 또 폐지 대상에 오른 자사고와 학부모들도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할 움직임이다. 결국 자사고 폐지 논란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법정 다툼으로 비화될 것으로 보인다.

 조희연 교육감은 이날 “자사고가 우수 학생의 선발효과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일반고와 동일한 학생들을 받아 교육경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교 서열화를 없애려면 궁극적으로 자사고 제도를 전면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교육감의 생각이 맞다, 틀리다를 떠나 자사고 폐지는 과정·절차에서 상당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문용린 전 교육감 시절 교육부 표준안을 기준으로 한 1차 평가에선 폐지 대상 자사고가 없었다. 그런데 조 교육감이 취임한 후 2차 평가에서 14개 학교, 3차 평가에선 8개 학교가 기준 미달로 바뀌었다. 학생 참여와 자치문화 활성화, 자사고 설립취지에 맞는 운영, 자부담 공교육비 적절성 등 3개 지표를 추가하면서 결과가 달라진 것이다. 자사고와 학부모들, 교육부가 평가방식이 자의적이라며 반대하는 이유다. 교육감에 따라 바뀌는 일관성 없는 교육행정으로 인해 이번에 폐지 대상이 안 된 자사고와 학부모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고교 입학을 앞둔 학생과 학부모도 혼란에 빠졌다. 또 지정 취소된 자사고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됐다. 예를 들어 130년 역사의 배재고는 자사고 전환을 계기로 120억원을 투자해 수용인원 400여 명의 기숙사를 준공한 상태다. 일반고로 바뀌는 순간, 지원율이 떨어질 게 분명하다.

 자사고를 없앤다고 일반고가 살아나진 않는다. 자사고 등장 이전에도 일반고는 이미 피폐해진 상태였다. 특히 강남권과 비강남권의 일반고 격차는 심각하다. 서울시교육청이 우선 할 일은 자사고 폐지가 아니다. 교육 취약지역의 공립학교부터 성공적인 공교육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